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0권(1993년 발간)
경북 안동(安東) 사람이다.
1919년 3월 21일 안동군 임동면(臨東面) 중평동(中坪洞)에서 장날을 이용하여 유연성(柳淵成)·유동수(柳東洙)·이강욱(李康郁)·박진성(朴晋成)과 아버지 김성복(金聖福) 등과 함께 독립만세 시위운동을 벌이기로 계획하였다. 이날 오후 2시경 편항(鞭巷)장날 장터에 모인 500여명의 시위군중과 함께 독립만세를 고창하며 편항주재소 및 면사무소를 습격하여 건물 및 집기를 파기하고 다음날 새벽까지 독립만세시위를 계속하다가, 일경의 무차별 총격에 많은 사상자가 발생하고 시위는 강제 해산된 후 주동자의 한 사람으로 붙잡혔다.
같은 해 5월 31일 대구지방법원에서 소위 소요, 보안법, 기물파손, 상해 등으로 징역 3년형을 선고받고 공소하였으나 8월 18일 대구복심법원에서 기각되어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2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제5집 1346∼1355면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제3권 405∼410면
- 판결문(1919. 8. 18 대구복심법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