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8권(1990년 발간)
을사조약 늑결에 찬동한 5적(五賊 : 朴齊純·李址鎔·李根澤·權重顯·李完用)과 광무황제의 양위를 강권한 7적(七賊 : 李完用·任善準·高永喜·李秉武·趙重應·李載崑·宋秉畯) 등을 주살하기 위한 계획이 1918년 11월 만주 봉천 서탑(西塔) 미국 선교사 집에서 이탁(李鐸)의 주도로 논의되었다.
그리하여 5적·7적들은 광무황제 국장(國葬)날에 배종할 것이 틀림없으므로 그 길목에서 이들을 처단하자는 방안이 채택되어 실행에 옮기기로 하고 이탁·강성곤 이하 27명으로 행동대를 구성하였다. 27명은 강성곤을 비롯한 안경식(安景植)·주병웅(朱秉雄)·김용우(金容友)·이종욱(李鍾郁)·이해삼(李海三)·차병제(車秉濟)·손창준(孫昌俊)·박기한(朴基寒)·이인식(李仁植)·박기제(朴基濟)·박진태(朴鎭台)·이종원(李鍾元)·한선옥(韓善玉)·오덕연(吳德衍)·한국보(韓國輔)·이연작(李演雀)·황 집(黃集)· 홍순범(洪淳範)·나경호(羅景鎬)·김병수(金炳洙)·최병인(崔秉寅)·임석도(林析道)·이동우(李東宇)·송동호(宋東浩)·성모(成某) 등이었다.
이 결사대는 3대로 편성되어 1919년 2월 24일 만주 봉천을 출발하여 한복으로 변장하고 국내에 들어와 이탁이 인솔한 1대 8명은 서울까지 진입하여 망우리에서 거사하고자 하였으나 기회를 놓치고, 3월 20일경 독립문의 퇴색된 태극기를 다시 칠하고 경고문·격문 등을 살포하는 등 활동하다가 일경에 의해 붙잡힐 때 그는 일경의 체포망을 뚫고 다시 만주로 귀환하여 계속 독립운동을 하였다고 한다.
정부에서는 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1963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7권 265면
- 한국독립사(김승학) 하권 74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