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8. 4. 23(음 (陰) ) 경기도 통진(현 (現) 김포군 (金浦郡) )에서 의병장 (義兵將) 정용대 의진 (鄭用大義陣) 에 참진 (參陣) 하여 무장 (武裝) 한 의병 (義兵) 18명 (名) 과 함께 동군 (同郡) 대패면 (大佩面) 양릉면 (陽陵面) 산진면 (山塵面) 의 동장 (洞長) 들로부터 무기 구입용 (武器購入用) 으로 15,000량 (兩) 의 군자금 (軍資金) 을 모집 (募集) 하고 이튿날 통진군내 (通津郡內) 각처 (各處) 에서 군도 (軍刀) 와 양총 (洋銃) 탄환 (彈丸) 등을 수합 (收合) 한 후 (後) 조운원 (趙云遠) 등에게 일병 (日兵) 에 관한 정보 (情報) 를 제공 (提供) 하며 활동 (活動) 하다가 피체 (被逮) 되어 유형 (流刑) 5년을 받은 사실이 확인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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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0권(1993년 발간)
경기도 통진(通津, 지금의 金浦) 사람이다.
1908년 4월 23일(음력) 향리인 경기도 통진군에서 정용대(鄭容大) 의진에서 활약하였다. 18명의 동료 의병과 함께 통진군내 3개면의 동장들을 모아놓고 1만 5천냥의 군자금을 모금하였으며 계속해서 군도와 양총(洋銃)으로 무장하여 교하군(交河郡) 민판서(閔判書)로부터 양총 7자루와 탄환 200발, 군도 2자루 등을 모집하는 등 활약하다가 일경에게 붙잡혔다.
1908년 10월 31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유형 5년을 선고받고 정배생활을 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2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별집 제1집 28·29면
- 판결문(1908. 10. 31 경성지방재판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