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4권(2000년 발간)
평북(平北) 사람이다.
평북 위원에서 독립군 지원 활동을 전개하였다.
국내에서 독립운동을 전개하다 소위 제령위반(制令違反)으로 징역 1년을 받은 바 있다.
국내에서 가족적인 3·1운동이 일어나자 만주지역을 중심으로 무장투쟁론이 적극 대두되었으며, 모든 재만 동포들의 절대적인 지지 하에 70여 개의 독립군부대가 편성되었다. 이들은 압록강과 두만강을 넘어 국내진공작전을 전개, 일본군 국경수비대를 교란시키는 무장활동을 전개하였다. 또한 청산리전투와 봉오동전투에서 만주에 진출한 일본군을 격퇴하였다.
그러나 독립군은 일본군의 대대적인 탄압에 밀려 소련·연해주 등지를 전전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자유시참변 이후 독립군 세력은 다시 만주에 돌아와 항일투쟁을 전개하기에 이르렀다.
정신보는 이러한 시기인 1923년 9월 1일에는 평북 위원군 화창면(和昌面) 개원동(蓋元洞)에서 국내로 진입하여 군자금을 모집하고 돌아가던 독립군 천마대원(天摩隊員)을 은신시켜 주었다가 일경에 탄로되어 그의 가족과 함께 소사(燒死)당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9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東亞日報(1923. 9. 12)
- 韓國獨立史(金承學) 下卷 263面
- 韓國獨立運動史(文一民) 291·292·462·478·480面
- 獨立新聞(1923. 10. 1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