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22권(2016년 발간)
1920년 중국에서 대한국민회(大韓國民會) 제2북지방회(第2北地方會) 참사(參事), 대한북로독군부(大韓北路督軍部) 군무국(軍務局) 과원(課員), 1923년 국민대표회의(國民代表會議) 대한구국단(大韓救國團) 대표 등으로 활동하였다.
1920년 중국 길림성(吉林省) 왕청현(汪淸縣)에서 대한국민회 제2북지방회 참사와 대한북로독군부 군무국 과원으로 활동하였다.
대한국민회는 북간도(北間島) 전역에서 행정 조직이 가장 잘 정비되어 있던 민정기관(民政機關)이었다. 1919년 3월 13일 용정(龍井)에서 개최되었던 조선독립축하회에서 조선독립기성회(朝鮮獨立期成會)가 결성되면서 발족되었다. 본부를 연길현(延吉縣) 하마탕(蛤?塘)에 두고 그 밑에 8개의 지방회(地方會)와 130여 개의 지회를 설치하였으며, 군자금 모집과 독립군 양성, 교민사회의 안정에 주력하였다. 국민회군은 대한국민회의 직할부대로 조직되었는데 1919년 겨울부터 군대를 조직하기 위한 본격적인 활동이 전개되었으며, 간부진으로는 사령관 안무(安武), 부관 최익룡(崔翊龍), 중대장 조권식(曺權植)ㆍ임병극(林炳極), 향관(餉官) 김석두(金碩斗)ㆍ허동규(許東奎) 등이었다. 국민회군의 초기 근거지는 왕청현 지인향(志仁鄕) 의란구(依蘭溝)였다. 1920년 5월 대한북로독군부로 편성되어 6월 7일에 봉오동전투에 참가하여 승리를 거두었으며, 청산리전투에서도 홍범도부대와 함께 전투에 참가하였다.
1923년 1월 3일 중국 상해(上海)에서 개최된 국민대표회의 북간도 대한구국단 대표로 파견되었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5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 獨立新聞(1922. 10. 12, 10. 21, 1923. 6. 13)
- 大韓國民會의 각 機關紙 및 役員(1920. 12. 20) 不逞團關係雜件-朝鮮人의 部-在滿洲의 部(25)
- 寧安縣地方 不逞團의 共産黨支部 組織의 건(1921. 12. 28) 不逞團關係雜件-朝鮮人의 部-鮮人과 過激派(2)
- 李侖 第2回 會見에 관한 건(1922. 2. 7) 不逞團關係雜件-朝鮮人의 部-在西比利亞(13)
- 1922년 6월중 間島地方 治安情況에 관한 건(1922. 7. 17) 不逞團關係雜件-朝鮮人의 部-在滿洲의 部(33)
- 高麗共産黨에 屬한 獨立新聞 主筆 尹海 奇禍 및 上海 國民代表會議에 관한 건(1922. 11. 7) 不逞團關係雜件-朝鮮人의 部-過激派(3)
- 上海 및 南京在住 不逞鮮人의 有力者 氏名에 관한 건(1923. 1. 8), 上海國民代表會議의 議事狀況에 관한 건(1923. 5. 18), 極東 靑年共産黨 名簿 입수의 건(1925. 4. 1) 不逞團關係雜件-朝鮮人의 部-在上海地方(5)
- 대한민국임시정부자료집(국사편찬위원회, 2011) 별책 제6권 329면
- 미주국민회자료집(도산안창호선생기념사업회, 2005) 제21권 281면
- 북간도지역 독립군단명부(국가보훈처, 1997) 265면
- 독립운동사자료집(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6) 제10집 340면, 제7집 1269면
- 日本外務省特殊調査文書(高麗書林, 1989) 제27권 498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