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 공훈록 24권(2019년 발간)
이화용은 일찍부터 한국 독립을 갈망했던 인사였다. 1920년 7월 10일 의군단에 가입하여 모연대원이 되었다. 8월에는 모연대장 신호영과 함께 간도 화룡현 함락동(咸樂洞) 외 네 곳의 촌락을 다니면서 한국인 수십 호에서 군자금을 모집하기도 했다. 9월 8일에는 역시 신호영 등 모연대원들과 함께 권총과 장총 등으로 무장한 채 함경북도 무산군 양수동(梁水洞) 김태산(金泰山)의 집에 갔다. 그곳에 숙박하고 있던 정일천(鄭日天)·나카오(中尾廣吉) 등을 대상으로 군자금을 모집하기도 했다.
이화용은 1921년 6월 1일 경성복심법원에서 이른바 ‘대정(大正) 8년 제령(制令) 제7호 위반’으로 징역 8년을 받아 옥고를 치렀다.
정부는 2017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불령단관계잡건(不逞團關係雜件)-조선인(朝鮮人)의 부(部)-재만주(在滿洲)의 부(部)(25)
- 독립운동사자료집(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6) 제10집 1159, 1160면
- 형사공소사건부(刑事控訴事件簿)
- 매일신보(每日申報)(1921. 5. 7)
- 동아일보(東亞日報)(1921. 5. 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