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 공훈록 28권(2023년 발간)
전라남도(全羅南道) 영암군(靈巖郡) 출신으로 중국 길림성(吉林省) 연길현(延吉縣) 국자가(局子街)로 이주하여 한약상(漢藥商)을 경영했다. 1923년 북간도에서는 교육열이 일어나 간도교육협회(間島敎育協會)가 조직되었는데, 이종회가 집행위원으로 활동하였다.
1926년 2월 동아일보(東亞日報) 국자가분국(局子街分局) 총무 겸 기자로 활동했다. 그러다 같은 해 12월 3일 국자가의 자신의 집에서 조선공산당원 김진국(金鎭國)과 진종완(陳宗琬)의 권유로 조선공산당 만주총국 동만구역국(東滿區域局)에 입당을 신청했다.
조선공산당 만주총국에서는 1927년 10월 2일 ‘제1차 조선공산당사건’관련자들의 재판 날짜에 맞추어 대중시위 계획을 수립했다. 그런데 당일 북간도 용정(龍井)에 비가 내려 시위를 감행할 수가 없었다.
다음날 시위를 위해 만주총국 조직부장 최원택(崔元澤) 등이 조선공산당 동만도구역국(東滿道區域局)의 책임자인 안기성(安基成)의 집에 모였다. 이를 탐지한 일제 경찰은 회의장을 포위해 29명의 조직원을 체포하는 등 대대적인 검거를 단행했다.
그 영향으로 이종회도 1927년 11월 7일 오후 4시경 국자가에서 체포되어 간도 일본총영사관 검사국에 이송되었다. 그 후 서울로 압송되어 경성지방법원에서 1928년 4월 30일 예심이 종결되었다. 1928년 12월 27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1년,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았다.
정부는 2022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 판결문(判決文)(경성지방법원 : 1928. 12. 27)
- 조선일보(朝鮮日報)(1927. 11 26, 1928. 11. 26, 11. 27, 1929, 1. 8)
- 동아일보(東亞日報)(1926. 2. 25, 1928. 5. 3, 11. 27, 12. 1, 12. 6)
- 수형인명부(受刑人名簿)
- 불령단관계잡건(不逞團關係雜件)-조선인(朝鮮人)의 부(部)-재만주在滿洲의 부(部)(34)-요주의선인(要注意鮮人)의 간도교육협회(間島敎育協會) 조직(組織)에 관한 건(간도총영사 : 1923. 9. 18)
- 일본외무성특수조사문서(고려서림, 1989) 제40권 542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