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9. 1. 24 양경학 의진 (梁景學義陣) 에 들어가 약 (約) 3개월간 (個月間) 활약 (活躍) 하였고 1909.2.15(음 (陰) )부터는 최산흥 의진 (崔山興義陣) 에 가담 (加擔) 하여 활동중 (活動中) 동년 (同年) 9월 30일에 순창군 (淳昌郡) 인화면 (仁化面) 중산리 (中山里) 에서 밀정 (密偵) 인 이용안 (李龍安) 을 만나자 양경학외 (梁景學外) 1명과 함께 그를 붙잡아 소도 (小刀) 로 처단 (處斷) 하는 등 활동 (活動) 하였으며 1909. 11. 22에 소위 (所謂) 강도 (强盜) 로 징역 10년형 (年刑) 을 받고 복역 (服役) 중 (中) 에 위 활동 내용 (活動內容) 이 추가 (追加) 확인 (確認) 되어 교수 (絞首) 를 받아 순국 (殉國) 한 사실이 확인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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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9권(1991년 발간)
전북 사람이다.
전북 순창군(淳昌郡)에서 활약한 최산흥(崔山興) 의병장의 휘하에서 항일활동을 폈다. 1909년 9월 30일 오후 12시경에 양경학(梁景學)·이국찬(李國贊)·조복동(趙卜同) 등과 함께 순창군 인화면(仁化面) 중산리(中山里)에서 밀정 이용안(李龍安)을 처단하는 등의 활동을 하다가 전주수비대에 의해 붙잡혔다.
1909년 11월 22일 소위 강도죄로 징역 10년형을 받고 복역중에 위 활동내용이 추가 확인되어 1910년 1월 24일 광주지방재판소 전주지부에서 소위 고살(故殺)죄로 교수형을 선고받아 공소하였으나 그해 3월 12일 대구공소원에서 기각되어 4월 18일 고등법원에서도 상고가 기각, 교수형이 확정되어 순국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1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獨立運動史資料集(國家報勳處) 別集 第1輯 881∼885面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