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9권(1991년 발간)
충북 사람이다. 1907년 8월 충북에서 기의(起義)하여 수백 명의 의병을 인솔하며 그중 3백명에게 각각 총기를 휴대시키고 충북 청주(淸州)·보은(報恩) 지방에서 활약하였다. 1908년 음력 11월 20일에는 홍치경(洪致敬) 등 4명과 함께 경북 순흥군(順興郡)에 거주하는 박씨집에 들어가 군자금을 모집하고 같은 달 하순경에는 충북 영춘군(永春郡) 대곡면(大谷面) 해일리.(海日里)에 거주하는 일진회원.(一進會員) 우성문(禹成文)이 헌병대에 밀고하여 의병활동을 방해하므로 원건상(元建常)등 8명과 함께 동인을 포박하여 연행한 후 총살하였다. 1908년 음력 12월 20일에는 김운선(金雲先) 등 의병 수 명과 함께 밀정으로 파악 된 충북 영춘군(永春郡)의 조명숙(趙明淑)을 처단하였다. 또 1909년 음력 1월 10일에도 경북 순흥군(順興郡) 단산면(丹山面)에 거주하는 마을이장 안모(安某)가 의병 홍치경을 헌병에게 밀고한 것을 알고 그를 처단 응징하였다. 1909년 2월 10월 김운선 등 의병 수명과 함께 옥대리(玉垈里)에 거주하는 목모(睦某)집에서 군자금을 모집하였고 그해 3월 14일에는 경북 문경군(聞慶郡) 동노소면(東老少面) 적성리(赤城里)에서 김운선 등 4명과 함께 의병이 되기를 거절한 김인호(金麟浩)를 처단하여 민족적 각성을 촉구하는 등의 활약을 하다가 붙잡혔다. 그후 1909년 경성공소원에서 소위 살인 및 강도죄로 교수형을 선고받고 순국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1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 獨立運動史資料集(國家報勳處) 別集 第1輯 365∼367·375面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