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4권(1987년 발간)
함남 영흥(永興) 사람이다.
1908년 함남 영흥에서 연명(鍊明)학교를 설립하여 교육활동을 전개하였으며, 1913년에는 만주로 건너가 건원학교(建元學校), 1916년에는 안도현(安圖縣)에 도전(道田)학교와 북구학원, 1918년에는 장백현(長白縣)에 덕수(德水)학원과 왕가(王歌)학원, 1920년에는 연길현(延吉縣)에 쟈피구학원, 1921년에는 이도구(二道溝)학원과 국자가(局子街)에 팔포강(八浦岡)학원을 설립하는 등 민족사상의 고취에 심혈을 기울였다. 1917년에는 한때 체포되어 회령(會寧)감옥에서 옥고를 치르기도 하였다.
한편 1920년 11월에는 안도현(安圖縣) 흥도자(興道子)에서 대진단(大震團)을 조직, 청년 2백명을 러시아 보병총으로 무장시켜 독립군을 양성하였으며, 야단(野團)의 지도자로서도 활약하였다.
1927년 10월에는 무국주의(無國主義)를 표방하고 원종(元宗)이라는 종교를 창립하였다고 기소되었으나 혐의가 약하여 무죄 방면되었다.
1928년 이후에는 농촌운동에 몸바쳐 간도 북쪽 노야령(老爺嶺)산록의 팔도하자(八道河子)에서 최일우(崔一宇)·이순서(李舜瑞)·김광헌(金光憲)가 더불어 다양한 농촌운동을 편 이후, 영고탑(寧古塔)에 조선민사(朝鮮民社)를 설치했고, 간도지방 곳곳에 동포사회에서 농우동맹(農友同盟)을 조직하여 농민운동의 조직화를 꾀했고, 팔도하자에 어복(魚腹)학원과 하음자(下 子)학원을 설립하였으며, 진우회(震友會)를 만들고 농촌운동을 통한 독립운동을 전개하였다. 그러나 1933년 3월 그를 시기하던 공산주의자들에 의하여 이역에서 피살되었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기 위하여 1977년에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다.
- 한국독립운동사(문일민) 277·321·371면
- 명치백년사총서(김정명) 2권 787·901·966·1019면
- 일제침략하한국36년사 8권 566면
- 동아일보(1927. 10. 8)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5권 330·679면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8권 269·351·352·465·778면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10권 562·563·566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