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7. 8.(음 (陰) ) 김형직 의진 (金衡直義陣) 에 참가 (參加) 하여 동료의병 (同僚義兵) 70~80여명 (餘名) 과 함께 총기 (銃器) 를 무장 (武裝) 하고 동년 (同年) 음력 (陰曆) 10월경 (月頃) 까지 충북 (忠北) 보은 (報恩) 연풍 문의군 (延豊文義郡) 각 지역 (各地域) 에서 활동 (活動) 하였고 1908년 4월부터는 의병 (義兵) 10여명 (餘名) 을 인솔 (引率) 하는 의병장 (義兵將) 이 되어 동년 (同年) 7월경 (月頃) 까지 청주 (淸州) 회인 (懷仁) 문의군 (文義郡) 에서 11명 (名) 으로부터 총 (總) 125원의 군자금 (軍資金) 을 모집 (募集) 하는 등 활동 (活動) 하다가 피체 (被逮) 되어 교수 (絞首) 순국 (殉國) 한 사실이 확인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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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9권(1991년 발간)
1907년 음력 8월경 김형직(金衡直)의진에 가담하여 동료의병 70∼80여 명과 함께 총기를 휴대하고 동년 음력 10월경까지 충북 보은(報恩)·연풍(延豊)·문의(文義)등 각지에서 활동하였다.
1908년 4월에는 의병 10여 명을 인솔하는 의병장이 되어 동년 7월경까지 충북 청주(淸州)·회인(懷仁)·문의(文義) 군내에서 11명으로부터 총 125원의 군자금을 모집하다가 붙잡혔다.
그후 1908년 9월 11일 공주지방재판소에서 소위 강도 및 살인죄로 유죄판결을 받고 1909년 3월 5일 경성공소원에서 교수형을 선고받아 상고했지만 그해 3월 20일 대심원에서 기각, 형이 확정되어 순국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1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獨立運動史資料集(國家報勳處) 別集 第1輯 23∼27·255·257面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