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3권(1996년 발간)
함경도 사람이다.
이동휘(李東輝)의 첫째 사위이다. 8세 때에 손가락을 잘라 어머니를 구한 효자로 알려진 인물이다. 1907년 계봉우(桂奉瑀)의 추천으로 신민회(新民會)에 가입하여 이동휘 휘하에서 활동하였다. 1911년 1월에는 계봉우와 함께 북간도로 망명하여 동지역의 계림촌(鷄林村)에서 교사로 활동하였다. 이어 1916년 12월에는 노령(露領) 연해주(沿海州) 도비허에 있는 화동학교에서 교사로 일하면서 재러동포 자제들의 민족의식 고취에 진력하였다. 한편 이 시기에 정창빈은 만주, 러시아지역의 대표적인 독립운동가인 이동휘의 장녀 이인순(李仁橓)과 혼인하였다.
1918년 가을경 북간도 국자가(局子街)에서 활동하던 그는 러시아 블라디보스톡으로 이주하였으며, 이곳에서 경제적으로 이동휘를 돕기 위하여 조그마한 사업을 시작하였다.
한편 1919년 11월 부인 이인순이 장티푸스로 사망하고 이어서 아들 정광우(鄭光宇, 5세)도 역시 장티푸스로 사망하자, 1920년 1월 27일 음독 자살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5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한국학연구(인하대학교 한국학연구소, 1993. 7) 제5집 별집, 리동휘 성재선생(리영일) 289∼290면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제5권 144면
- 독립신문(1920. 4. 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