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9권(1991년 발간)
1909년 2월 19일 전해산(全海山)의진에 가담하여 활약하다가 그해 2월 22일에 동료의병 5명과 함께 총기를 휴대하고 함평군(咸平郡) 읍내면(邑內面) 교동(校洞) 신창순(申昌順)의 집에 들어가 현금 1,500냥을 모집하였다.
동년 2월에는 전해산의진의 선봉인 임대장(林大將)이 인솔하는 의병 25명과 함께 전북 흥덕군(興德郡) 북면(北面) 후포(後浦) 소재 일본인 평정덕장(平井德藏)의 집에 들어가 그를 사살하고 또 동거하는 일본인 1명을 총으로 난타하여 부상을 입힌 후 양목(洋木) 2필을 취하였다. 이때 임대장의 지시를 받고 집의 이엉 두곳에 불을 질러 가옥 3동을 불태우기도 하였다.
동년 5월 20일 경에는 동료의병 50명과 함께 영광군(靈光郡) 포천시장(苞川市場)에서 영광읍내에 거주하는 조박사(趙博士)로부터 현금 2,000냥을 모금하는 등의 활동을 하다가 붙잡혔다.
1909년 6월 17일 광주지방재판소 전주지부에서 소위 강도 및 살인·방화죄로 교수형을 선고받고 항고하였으나 7월 17일 대구공소원과 8월 13일 대심원에서 각각 기각, 형이 집행되어 순국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1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獨立運動史資料集(國家報勳處) 別集 第1輯 353∼357·369∼371面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