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2권(1996년 발간)
한족총연합회(韓族總聯合會)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이다. 1929년 남만주지역에서 국민부(國民府)가 조직되자 북만주 지역의 신민부(新民府)의 군정파(軍政派) 출신들은 국민부와 공산주의자들에게 대항하기 위하여 재만조선무정부주의자연맹(在滿朝鮮無政府主義者聯盟)과 결합하여 동년 7월에 한족총연합회를 조직하였다. 한족총연합회에서는 동년 8월 선언·강령·사업정강 등을 발표하였는데, 선언문에서 "과거에 연출된 만악의 원인과 복잡한 제현상을 청산 배제하고 우리 민중의 생활 향상과 혁명전선의 진전을 도모하는 자주자치적 생활조직을 기초로 해서 전민중적으로 연합조직을 완성해야 한다"고 하여 권력의 중앙집중을 부정하고 자주적 조직의 연합체를 지향하는 아나키즘 사회를 지향하고 있다. 김야운은 한족총연합회에 무정부주의자로서 참여하였으며, 이 조직을 통하여 아나키사회를 건설하고자 하였으며, 교육위원부 차장으로 활동하였다. 당시 김야운과 함께 활동한 한족총연합회의 주요 간부 명단을 보면, 김좌진(金佐鎭, 위원장), 권화산(權華山, 부위원장), 한규범(韓奎範, 조직·선전·농무부 위원장), 정 신(鄭信, 조직·선전·농무부 위원장), 강석천(姜石泉, 군사부 부위원장), 민 무(閔武, 중앙간부), 유 현(劉賢, 중앙간부), 김종진(金宗鎭, 조직·선전·농무부 위원장), 이붕해(李鵬海, 군사부 위원장), 이종주(李鍾柱, 중앙간부), 이을규(李乙奎, 교육부위원장), 이 달(李達)·이덕재(李德載)·엄형순(嚴亨淳, 차장), 박경천(朴耕天, 교육부 부위원장), 이백호(李白虎, 군사부 별동대 제3중대장), 박찬순(朴燦順, 경제부 위원장) 등이었다. 김야운은 1929년 12월 한족총연합회가 해림(海林)에서 북만민립중학기성회(北滿民立中學期成會)를 조직하고자 할 때 김종진(金宗鎭)·이강훈(李康勳)·이지산(李芝山) 등과 함께 집행위원으로 선출되어 민립중학을 개교시키기 위하여 노력하였다. 그가 이처럼 집행위원으로 선출된 것은 그가 당시 다년간 교육 경험을 가진 인물로, 구강포 한인학교에서 교무를 전담하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교육부 차장으로 일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한편 김야운은 북만지역의 공산주의자들과 대항하기 위하여 1930년 3월 3일 한족총연합회의 지도당으로 신한농민당(新韓農民黨)이 조직되자 주요 간부로 활동하였다. 이처럼 활발한 활동을 전개하던 김야운은 1931년경 이백호(李白虎)·박태춘(朴泰春) 등 독립운동을 빙자하여 활동하는 무리들에게 희생되어 순국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5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 민족해방운동과 나(이강훈, 1994) 129·130·136면
- 한국독립운동사(문일민) 323면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제5권 597·623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