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9권(1991년 발간)
1908년 음력 2월 충남 부여(扶餘) 일대에서 신여도(申汝道)외 20여 명을 인솔하고 군자금 모집활동을 하였다. 동년 8월 24일에는 이종화(李鍾化)·오양선(吳良善)·민창식(閔昌植) 등과 합동하여 80여 명이 각기 총칼을 휴대하고 보령(保寧) 읍내 순사주재소를 공격한 후 10월 15일에는 30여 명의 선봉장이 되어 아산군(牙山郡) 신창읍(新昌邑)내 순사주재소를 공격하여 군수품 50여 종을 확보하였다. 1909년 음력 3월부터는 설임수(薛仁洙)·박성돌(朴成乭)·최봉실(崔奉實)외 수십명의 부하와 함께 청양(靑陽)·정산 등지에서 군자금 모집 등의 활약을 하다가 붙잡혔다. 그후 1909년 11월 24일 공주지방재판소에서 소위 강도죄로 유죄판결을 받고 공소했으나 1909년 12월 25일 경성공소원에서 교수형이 확정되었으나 형집행 전 옥중 순국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1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獨立運動史資料集(國家報勳處) 別集 第1輯 379·380面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