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9년 노령 연해주 연추 (煙秋) 에서 안중근 (安重根) ·김기룡 (金起龍) 등과 단지동맹 (斷指同盟) 을 맺고, 동의회 (同義會) 결성에 참여하여 서기 (書記) 로 활동하면서, 경원 (慶源) · 회령 (會寧) 등 두만강 연안의 일본군 초소를 습격하는 활동에 가담하였고 이후 훈춘 (琿春) , 연추 (煙秋) , 블라디보스톡 등지에서 군자금을 모집하고 일본영사관 및 헌병대에 대한 습격을 계획하는 등의 활동을 전개하였으며, 1916년 순치동제당 (脣齒同濟黨) 을 조직하고 훈춘선인기독교우회 (琿春鮮人基督敎友會) 를 거점으로 배일사상을 고취 하고 군자금을 모집하다가 1917년 폐병으로 사망한 사실이 확인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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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취(鼓吹) : 의견이나 사상 따위를 열렬히 주장하여 불어 넣음
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8권(2010년 발간)
백규삼은 1909년 노령 연해주·연추(煙秋)에서 안중근(安重根)·김기룡(金起龍) 등과 단지동맹(斷指同盟)을 결성하였다. 이위종(李瑋鍾)이 결성한 동의회(同義會)에 참여하여 서기(書記)로 활동하면서 경원(慶源)·회령(會寧) 등 두만강 연안의 일본군 초소를 습격하는 활동에 가담하였다.
이후 혼춘(琿春)·연추·블라디보스톡 등지에서 군자금을 모집하고 일본영사관 및 헌병대에 대한 습격을 계획하는 등의 활동을 했으며, 1916년 한인독립운동 세력을 모아 순치동제당(脣齒同濟黨)을 조직하고 발기인으로 참여하였다. 혼춘선인기독교우회(琿春鮮人基督敎友會)의 부회장 및 회장을 지냈으며 기독교세력을 거점으로 배일사상을 고취하고 군자금을 모집하다 1917년 폐병으로 사망하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08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권업신문(1914. 4. 12)
- 排日鮮人에 관한 情報(1914. 11. 13) 不逞團關係雜件-朝鮮人의 部-在滿洲의 部(4)
- 排日鮮人 退露처분에 관한 건(李瑋鍾 건)(1915. 5. 17) 不逞團關係雜件-朝鮮人의 部-在西比利亞(5)
- 琿春鮮人基督敎友會 役員名簿에 관한 건(1916. 3. 13) 不逞團關係雜件-朝鮮人의 部-在滿洲의 部(5)
- 韓國獨立史(金承學, 1970) 하권 159면
- 한국독립운동사 자료(국사편찬위원회) 제7권, 제13권, 제15권
- 獨立新聞(1920. 5. 15)
- 琿春方面 不逞者의 行動, 斷指者의 所在(1914. 10. 29) 不逞團關係雜件-朝鮮人의 部-在滿洲의 部(4)
- 排日鮮人의 動靜에 관한 건(1915. 2. 16) 不逞團關係雜件-朝鮮人의 部-在滿洲의 部(4)
- 排日鮮人에 관한 名簿 送付의 건(1915. 11. 1) 不逞團關係雜件-朝鮮人의 部-在滿洲의 部(5)
- 不逞鮮人 名簿에 관한 건(1916. 2. 8) 不逞團關係雜件-朝鮮人의 部-在滿洲의 部(5)
- 圖們江對岸中國領情況彙報(1917. 1. 24) 不逞團關係雜件-朝鮮人의 部-在滿洲의 部(6)
- 韓國獨立運動史(文一民, 1956) 50면
- 當地 鮮人의 北鮮 습격계획에 관한 건(1913. 7. 24) 不逞團關係雜件-朝鮮人의 部-在西比利亞(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