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3권(1996년 발간)
1919년 5월 30일 안중석은 노령지역에서 결사대에 가입하여 참모부장으로 활동하였다. 그리고 함께 활동하던 동지인 민의회총모장(民議會總謀長) 박하남(朴河湳), 민보서기(民報書記) 장병석(張秉奭), 결사대의원 주광식(朱光植) 등과 같이 다음과 같은 통고문을 작성하기도 하였다.
종전부터 독립운동을 하여 왔고, 본년(1919-필자 주) 이태왕(李太王)의 제붕(帝崩)할 즈음 우리 한족동포의 궐기가 하등 목적을 달성할 가능성이 없으니 유감이고, 장차 우리 한족은 이전보다 더 결사적 의기로서 굳건히 단결하여 행동한다면 독립을 본년 중에 성립할 수 있으니 발기자는 모든 의무를 다해야 한다.
안중석은 이 통고문을 통하여 동포들에게 단합하여 독립운동에 나설 것을 주장하였던 것이다.
한편 1921년 2월 2일 안중석은 김상배(金相培)·백학원(白學元) 외 4명과 함께 안동현(安東縣) 구연성(九連城) 부근 삼도만(三道灣) 위자구(葦子溝)에 있는 소(蘇)씨 집에서 유숙하였다. 그러나 이를 탐지한 일경의 습격을 받게 되었는데, 일경은 이들을 체포하기 위하여 7명의 일경이 평북 의주(義州)까지 가서 5명의 응원을 얻어 12명의 순사가 한밤중에 집을 포위하고 방화하였다. 이에 안중석 등은 일경과 교전하여 경부(警部) 강전(岡田)을 사살하는 한편 순사 1명에게 중상을 입히는 전과를 올렸으나, 계속되는 전투에 중과부적으로 인해 안중석은 동지들과 함께 전사 순국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5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 명치백년사총서(김정명) 제3권 438면
- 독립신문(1921. 2. 1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