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2권(1996년 발간)
대한청년단연합회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이다.
대한독립청년단(大韓獨立靑年團)은 1919년 4월에 중국 안동현(安東縣) 구시가(舊市街) 풍순전(豊順錢)에서 국내에서 활약하던 학생 조재건(趙在健)·함석은(咸錫殷)·오학수(吳學洙)·지중진(池仲振)·박영우(朴永祐) 등이 만주로 피신하여 조직한 독립운동 단체이다.
이 단체의 주요 간부를 보면 총재에 안병찬(安秉瓚), 단장 함석은, 서기 장자일(張子一), 간사 박영우 등이며, 주요 구성원은 20대 청년들이고, 근대적인 교육기관에서 공부하였으며, 출신지는 대부분이 평북지방이다.
대한독립청년단은 임시정부의 운동비 조달에 적극 참여하였으며, 『반도청년보(半島靑年報)』를 간행하여 임시정부의 입장을 널리 선전하였다. 그러다 1919년 11월 대한독립청년단이 대한청년단연합회(大韓靑年團聯合會)로 확대개편되었다. 당시 대한청년단연합회의 주요 간부로는 총재 안병찬, 부총재 김찬성(金燦星), 총무 차경신(車敬信)·김승만(金承萬), 재무부장 김시점(金時漸), 편집부장 함석은, 통신부장 오학수, 교육부장 최지화(崔志化), 교제부장 김두만(金斗萬), 부총재 겸 노동부장 박춘근(朴春根), 경호부장 여순근(呂淳根), 서기 오능조(吳能祚), 교육부장 이 탁(李鐸) 등을 들 수 있다. 그리고 이 대한청년단연합회는 1920년 민국독립단(民國獨立團)과 연합하여 광복군사령부(光復軍司令部)로 발전하였다.
김택빈은 1920년 12월 상순경 만주 관전현(寬甸縣) 동로(東路) 대청면(大淸面) 만보동(萬寶洞)에 거주하면서 대한청년단연합회에 가입하여 활동하다가 일경 10여 명의 습격을 받고 체포되어 국내로 압송되었다. 그런데 이 때 조금도 굴복하는 태도가 없이 당당한 모습을 보이자 일경이 총살하여 순국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5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 독립신문(1921. 3. 5)
- 한국독립사(김승학) 하권 107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