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3권(1996년 발간)
1922년 8월, 서간도 환인현(桓仁縣)에서 대한통군부(大韓統軍府)를 중심으로 한 여러 독립운동단체의 통합으로 대한통의부(大韓統義府)가 조직될 무렵, 안병기는 광정단(匡正團)에서 활동하였다. 그가 참여한 광정단은 1922년 장백현(長白縣)에서 대한독립군비단(大韓獨立軍備團)·흥업단(興業團)·태극단(太極團)·광복단(光復團) 등 4개단체가 통합하여 조직된 것이다.
광정단 조직 당시 주요 간부를 보면, 단장 김호익(金虎翼), 총무장 윤덕보(尹德甫), 군무장 강진건(姜鎭乾), 재무장 김관용(金寬用), 비서장 장승언(張承彦) 등을 들 수 있다.
안병기가 참여한 광정단은 조직 후 군사적인 조직과 훈련을 통하여 항일역량을 강화하여 나갔으며, 1923년 봄에는 중앙 총본부를 무송현(撫松縣)에 두고, 임강현(臨江縣)에는 따로이 암살단을 두어 활동하였다. 또한 1923년 6월 중에는 이러한 군사활동 외에 문화, 산업 방면에도 유의하여 조직을 개편하였는데, 당시의 주요 간부 명단을 보면, 단장 윤병용(尹秉庸), 부단장 김호익, 총무 석계(石桂), 비서 김성진(金聲振), 재무부장 김국태(金國泰), 서무부장 장승언, 경호부장 정철명(鄭哲明), 군사부장 이한평(李漢平), 군법관장 김용대(金容大), 문화부장 한성일(韓性一), 산업부장 최진용(崔鎭鏞) 등이었다.
광정단은 1923, 4년에도 윤세복(尹世復)·김호 등을 고문으로 하여 윤덕보·강진건 등이 일을 직접 집행하여, 무기의 구입, 독립군 양성 등의 사업을 전개하였다. 특히 1924년 10월부터는 함경북도 대안 지역에서 활발한 항일운동을 전개하였다.
안병기는 1925년 4월 2일 오전 2시경 무장활동을 전개하고자 국내진입을 시도했다. 그런데 평북 후창(厚昌)경찰서 강호주재소에 근무하는 고견(高見) 등 2명의 순사가 금창(金昌) 출장소로 향하던 중 안병기 일행을 발견하였다. 이에 안병기 등은 동지 10여 명과 함께 이들과 교전을 벌였으며, 그 과정에서 일경의 총에 맞아 전사 순국하였다.
정부에서는 공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5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 동아일보(1925. 4. 7)
-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제14집 933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