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9권(2011년 발간)
만주에 근거를 둔 대한광복군사령부 부대원을 도와 일제에 항거하다 희생되었다.
대한광복군사령부는 1919년 12월 경 대한의용군사의회(大韓義勇軍事議會), 한족회(韓族會), 기원독립단(紀元獨立團) 등의 독립운동단체들이 관전현 향로구(香爐溝)에서 통합을 위한 회의를 개최하는 과정에서 조직되었다. 이후 김승학(金承學), 안병찬(安秉贊), 이탁은 차례로 상해로 가서 대한민국 임시정부에 독립운동전선의 통일기관 설치에 대한 동향을 보고 하였고, 이 과정에서 임시정부는 이들 기관의 부서명칭을 결정하여 광복군참리부(光復軍參里部)와 광복군사령부가 조직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박창성은 1921년 10월 하순 함경남도(咸鏡南道) 단천군(端川郡) 황곡(黃谷)에 주둔한 광복군사령부원(光復軍司令部員) 16명이 12월 17일 회군(回軍)하던 중 길림성(吉林省) 장백현(長白縣) 부근 부흥동(富興洞) 본인 집에 기숙(寄宿)했다가 일군(日軍)의 습격으로 중상(中傷)을 입고 사망하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0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韓國獨立運動史(文一民) 291, 535면
- 독립신문(1922. 2. 20)
- 신한민보(1922. 3. 3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