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22권(2016년 발간)
1932년 중국 봉천성(奉天省) 집안현(輯安縣)에서 조선혁명군(朝鮮革命軍) 대원으로 활동하다 봉천영사관(奉天領事館) 경찰에 체포되어 순국하였다.
조선혁명군은 1927년 9월에 개최된 정의부(正義府) 중앙회의(中央會議)에서 정의부 의용군(義勇軍)이 개편되어 조직되었다. 1929년 4월 정의부 주도세력이 국민부(國民府)를 결성하자 그대로 계승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후 조선혁명군은 국민부와 조선혁명당(朝鮮革命黨) 휘하의 군사조직으로 활동하였으며, 1931년 만주사변 이전에는 주로 친일세력 숙청, 교민 보호, 국내 진입작전에 의한 일제 기관 파괴 및 일제 관헌 등에 대한 처단을 목표로 활동하였다. 일제와의 투쟁이 격화되는 과정에서 간부 진용은 여러 차례 변화되었는데 1930년 8월 8일 개최된 조선혁명당 중앙집행위원회(中央執行委員會)에서는 제1중대장 김보안(金保安), 제2중대장 양세봉(梁世奉), 제3중대장 이윤환(李允煥), 제4중대장 김문거(金文擧), 제5중대장 이종락(李鍾洛) 등이 임명되었다. 1930년대 후반까지 만주지역에서 가장 활발한 항일무장투쟁을 전개하였다.
박일창은 조선혁명군 제1중대 병졸로 활동하다 1932년 1월 9일 집안현 위사하 두외자에서 체포되었다. 같은 해 4월 8일 이른바 제령 위반 및 치안유지법(治安維持法) 위반으로 홍명준(洪明俊)ㆍ한정범(韓貞範) 등 19명과 함께 신의주검사국으로 송치되었다. 일제 경찰의 고문으로 재판 전에 순국하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5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 東亞日報(1932. 4. 10)
- 韓國獨立運動史(文一民, 1956) 459면
- 韓國獨立史(金承學, 1965) 下卷 149면
- 독립운동사자료집(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6) 제10집 613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