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거의(擧義) : 의병을 일으킴
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4권(2000년 발간)
황해도 사람이다.
의암(毅菴) 유인석(柳麟錫)의 문인으로 1896년 전기의병때 평북 용천(龍川)에서 종사하였으며, 후기의병 이후 연해주로 망명하여 3·1운동 뒤에는 만주에서 대한독립단(大韓獨立團)의 부참모장으로 활약했다.
박양섭은 1896년 유인석이 제천의진(堤川義陣)을 결성하여 활동하다가 북행할 당시 평북 용천(龍川)에서 종사하였다. 그후 그는 1907년 군대해산과 더불어 황해도 일대의 유생들이 평산(平山)에서 의병을 일으킬 때 참가하여 박기섭(朴箕燮)을 의병장으로 한 평산의진의 창설에 앞장섰다. 당시 평산의진에는 황해도 일대의 유생들이 대거 참가하였는데, 이때 그는 의진의 참모로 활동하였다.
이 평산의진은 중군장, 돌격장, 유격장, 그리고 7개 부대의 중대장들이 각기 소부대를 편성하여 운영하였다. 유림의 지휘하에 농민, 포수, 해산군인 등 수천 명의 군사들이 황해도 각지에 분산 파병되어 일본군과 그 침략기관을 처단 공격하는 항일 무장투쟁을 전개하였다.
그러나 일본군의 거센 공세속에서 유인석이 해외에서 재기를 도모하고자 1908년 7월 연해주로 향할 때 박양섭은 박정빈(朴正彬) 등 의병장과 함께 유인석을 따랐다. 그는 스승인 유인석과 함께 연해주 블라디보스톡에서 13도의군(道義軍)과 성명회(聲明會) 등의 조직을 통하여 국권회복에 힘을 기울였으나 1910년 결국 나라가 망하자, 간도로 근거지를 옮겨 항일독립운동을 계속하였다.
1919년 중국 봉천성 유하현 삼원보에서 대한독립단(大韓獨立團)이 조직될 때 그는 부참모장에 피선되어 독립군 활동을 전개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8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 倡義錄 丁未義邀 黃海道(1947, 毛筆草本)
- 延白郡誌(延白郡誌編纂委員會, 1986) 443面
- 韓國獨立運動史(文一民) 39·48·252面
- 獨立運動史(國家報勳處) 第1卷 625面
- 獨立運動史(國家報勳處) 第5卷 245面
- 毅菴集(柳麟錫) 下卷, 700面
- 韓國獨立史(金承學) 下卷 144面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