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 공훈록 28권(2023년 발간)
황해도(黃海道) 봉산군(鳳山郡) 만천면(萬泉面)에서 태어났다. 농업에 종사하다가 중국 하얼빈(哈爾濱)에 본부를 둔 고려혁명군(高麗革命軍) 결사단(決死團)이라는 비밀결사에 참여했다. 1929년 11월에 가입하여, 결사단원 임학수(林學守)와 함께 1930년 1월 2일 하얼빈에서 은대양(銀大洋) 100원을 모집하였다.
같은 해 1월 17일에는 이덕호(李德浩) 집에서 대양 3,700여 원을 군자금으로 모집하였다. 1월 24일에는 곽성복(郭成福)의 집에서 대양 148원, 금품 27~28엔이 들어 있는 지갑 등을 군자금으로 확보하였다. 2월 4일에는 김헌(金軒)과 함께 이태형(李泰亨)이 납부하기로 한 대양 200원 가운데 잔금 90원을 전달하라는 편지를 보냈다.
이처럼 군자금을 모집하다가 1932년 2월 18일 김보형(金寶炯)‧최기호(崔基浩) 등과 함께 하얼빈 일본영사관 경찰에 체포되었다. 3월 19일 신의주경찰서에 압송되어 취조받고, 25일 검사국에 송치되었다. 4월 30일 신의주지방법원에서 ‘치안유지법(治安維持法) 위반‧강도상인‧강도’로 징역 6년을 선고받았다. 그에 따라 신의주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렀다.
정부는 2022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판결문(判決文)(신의주지방법원 : 1932. 4. 30)
- 조선일보(朝鮮日報)(1929. 11. 1, 1930. 4. 13)
- 중외일보(中外日報)(1930. 3. 27)
- 동아일보(東亞日報)(1930. 3. 27, 1932. 4. 23, 4. 29, 5. 5)
- 매일신보(每日申報)(1932. 3. 29, 4. 23)
- 가출옥(假出獄)의 건 구신(具申)(신의주형무소장 : 1935. 5. 31)
- 집행지휘서(執行指揮書)(신의주지방법원 검사국 : 1932. 5. 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