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 공훈록 28권(2023년 발간)
함경남도(咸鏡南道) 북청군(北靑郡) 북청면(北靑面) 출신 사회주의 계열 독립운동가이다. 1925년 4월 18일 서울에서 권오설(權五卨)‧김단야(金丹冶) 등과 고려공산청년회를 조직하고 집행위원 겸 선전부를 담당하였다. 제1차 조선공산당 사건으로 고려공산청년회 회원들이 일제 경찰에 체포되자 1926년 3월 중국 상해(上海)로 피신했다.
1927년 7월 오기선(吳基善)의 권유로 조선공산당 만주총국에 가입하여 선전부장을 맡았다. 만주총국에서는 1927년 10월 2일 ‘제1차 조선공산당사건’ 재판 날짜에 맞추어 대중시위 조직을 계획했다. 그러나 당일 북간도 용정(龍井)에 비가 내려 시위를 추진하지 못했다. 다음 시위 계획을 위해 안기성(安基成)의 집에 모여 있던 만주총국 조직부장 최원택(崔元澤) 등을 일제 경찰이 포위하여 29명이 체포되었다.
이러한 제1차 간도공산당 사건으로 김지종 등은 서울로 압송되었고 1928년 5월에 경성지방법원 예심이 종결되었다. 변호사들은 김지종 등에게 ‘제령(制令) 7호 위반’을 적용할 것을 주장했다. 그럼에도 재판 과정에서는 ‘치안유지법(治安維持法)’위반이 적용되었다. 그에 따라 1928년 12월 27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치안유지법(治安維持法) 위반으로 징역 5년을 선고받았다. 1929년 1월 4일 공소를 포기함에 따라 형이 확정되어 서대문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렀다.
정부는 2022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 판결문(判決文)(경성지방법원 : 1928. 12. 27)
- 인사기타정보서류철(人事其他情報書類綴)(조선총독부 법무국 행형과 : 1927-1929) -형사피고인(刑事被告人) 이감(移監) 수용(收容)의 건(서대문형무소장, 1927. 10. 20) 32면
- 조선일보(朝鮮日報)(1927. 10. 27, 1929. 1. 8)
- 동아일보(東亞日報)(1928. 12. 1)
- 신분장지문원지(身分帳指紋原紙)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