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4권(2000년 발간)
구한국군인 출신으로 중국 만주에서 북로군정서(北路軍政署) 제3중대장으로 청산리전투에 참전하여 전공을 세웠다.
김찬수는 1920년 8월 북로군정서에서 대한제국 장교 영입을 위하여 국내에 파견된 이성규(李成奎)를 따라 김규식(金圭植)·홍충희(洪忠喜)·박형식(朴亨植) 등과 함께 북로군정서에 입대하였다. 북로군정서는 1919년 북간도 왕청현(汪淸縣)에서 서일(徐一)·김좌진(金佐鎭) 등이 중심이 되어 조직한 무장독립운동단체였다.
그는 1920년 9월 12일 북로군정서에서 보병 1개 대대를 편성하였을 때 김규식·홍충희·오상세(吳祥世) 등과 함께 중대장에 임명되어 대대장 김사직(金思稷)을 보좌하였다. 1921년 10월 21일 아침 화룡현(和龍縣) 삼도구(三道溝) 천수동(泉水洞)에서 일본군과의 전투에 참전하였다.
청산리부근 전투에서 적군의 공격을 격파한 독립군이 갑산촌(甲山村)에 도착하여 거주동포들의 환대를 받으며 쉬는 동안, 북로군정서 독립군 사령부는 부락민들로부터 적정에 대한 보고를 받았다. 적 기병 1개중대가 갑산촌을 지나 30리 떨어져 있는 천수평에 들어가 머물고 있다는 것이었다. 이에 공격을 가하여 적의 기마 중대 120명을 거의 전멸시켰다. 이 천수평 전투시 그는 제3중대장으로 참전하여 큰 전과를 올렸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8년에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다.
- 獨立運動史(國家報勳處) 第5卷 365面
- 韓國獨立運動史(文一民) 310∼313面
- 民族獨立鬪爭史史料(海外篇) 73面
- 武裝獨立運動秘史(蔡根植) 79面
- 朝鮮獨立運動(金正明) 第2卷 976·978面
- 朝鮮民族運動年鑑(在上海日本總領事館) 93面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