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8권(2010년 발간)
김재호는 1920년 중순 재만 독립군단인 흥업단(興業團)의 단원으로 활동하였다.
흥업단은 1920년 남만주의 무송현(撫松縣)에 근거지를 구축하며 성립된 독립군단이었다. 이 군단은 압록강에 설치된 일제의 국경수비대를 대상으로 무장활동을 펼치는 한편, 국내진입 유격전도 활발히 펼쳤다.
그러나 1920년 대규모 일본군의 서북간도 침입으로 흥업단의 단세도 약화되었다. 이에 흥업단에서는 적극적인 항일 무장투쟁을 다지는 공시문(公示文)을 반포하고, 독립군의 힘을 상승시키기 위한 독립군 연합체 구성을 추진했다. 즉 흥업단 지도부는 장백현(長白縣)에 설치된 흥업단 지단(支團)을 그 지역의 다른 군단들과 연합시켜 군사 작전상의 결속기구를 결성하고자 했던 것이다. 장백현은 압록강과 접해있는 지역이었기에 독립군이 무장력과 투쟁의지만 가진다면 얼마든지 효과적인 국내진입 유격전을 수행할 수 있는 지역이었다. 흥업단 지도부의 이같은 노력에 의해 장백현에는 1921년 1월 흥업단 지단과 대한독립군비단(大韓獨立軍備團)·태극단(太極團)·대진단(大震團) 지단·광복단(光復團) 제1, 제2 결사대가 연합한 독립군연합회가 결성되었다. 이 연합회 구성 군단들은 이후 군사작전을 함께 계획하여 효과적이고 활발한 항일무장투쟁을 전개하였다.
장백현을 비롯한 남만주지역 독립군단이 이 같은 항일투쟁의 의지를 가지고 있었기에 일제는 1920년 초부터 이들의 세력을 소멸시키기 위해 노력하였다. 따라서 1920년 중반 일제는 중국 마적 두목 장강호(長江好)를 매수하여 이 지역의 한국 독립군들을 공격하도록 하였다. 김재호는 이러한 일제와 중국 마적간의 밀약에 의해 1920년 음력 5월 장강호 마적단에 붙잡혀 몽강현(濛江縣)에서 갖은 고문을 당하다가 그 해 8월 9일에 압록강 상류 삼림 속에서 피살(被殺) 순국(殉國)하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09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 朴殷植全書(단국대 동양학연구소, 1975) 上, 669~670면
- 震壇週報(1920. 11. 28)
- 韓國獨立運動史(文一民) 311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