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8권(2010년 발간)
김윤희는 1926년 3월 중국 길림성(吉林省) 위하현(葦河縣)에서 재만 독립군단인 신민부(新民府)에 가입하여 활동한 인물이다.
신민부는 1925년 3월 북만주의 영안현(寧安縣)에서 대한독립군단(大韓獨立軍團)·대한독립군정서(大韓獨立軍政署) 중동선교육회(中東線敎育會) 등과 북만지역의 민선대표 및 국내단체의 대표들이 통합해 성립한 독립군단이었다. 김좌진(金佐鎭)을 비롯한 민족주의 계열 인사들이 주축이 되어 조직한 신민부는 정의부(正義府)·참의부(參議府) 등과 마찬가지로 북만주 영안현과 주하(珠河)·목릉(穆陵)·밀산(密山)·요하(饒河)·돈화현(敦化縣) 등의 이주 한인을 관할하며 자치활동을 펼치는 한편 항일무장투쟁을 전개하였다.
신민부는 무장투쟁 방향을 주로 군자금모금과 만주내 친일파 척결에 두었다. 근거지가 국내와는 상당히 떨어진 북만주에 있었기 때문에 국내진입전을 전개하기는 어려웠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주 한인을 위한 자치활동은 대체적으로 교육과 실업장려를 위한 활동에 모아졌다. 자치와 무장활동을 위해 신민부는 중앙조직 내에 민사부와 군사부를 설치해 이들 업무를 총괄하며 추진하였다.
김윤희는 이 같은 신민부 중앙조직의 업무 중 자치활동을 총괄한 민사부의 업무를 맡아 활동하였다. 즉 이주 한인의 안정된 생활을 위한 업무를 지원하고 지휘하였던 것이다. 업무를 수행하던 중 김윤희는 1928년 1월 27일 일제의 하얼빈 영사관 경찰에 체포되었다. 국내로 압송된 김윤희는 1929년 7월 25일 평양복심법원에서 소위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2년을 선고받고 복역 중 옥고 1년 10개월여 만인 1930년 12월 15일 평양형무소에서 고문의 후유증으로 옥사 순국(殉國)하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09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 日帝侵略下韓國36年史(국사편찬위원회) 제8권 714, 929면
- 韓國獨立運動史(文一民) 328면
- 判決文(平壤覆審法院:1929. 7. 25)
- 身分帳指紋原紙(警察廳)
- 假出獄執行濟의 件 報告(1940. 7. 18)
- 東亞日報(1928. 10. 30)
- 中外日報(1929. 6. 10)
- 新韓民報(1929. 7. 11)
- 독립운동사자료집(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제14집 920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