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8권(2010년 발간)
김원철은 1923년 6월 재만 독립군단인 통의부(統義府) 의용군 대원으로 국내진입전을 전개하여 평북 강계군에서 일경찰대와 전투를 벌였다. 1924년 이후에는 참의부(參議府) 대원이 되어 여러 국내 진입 유격전에서 활약하였다. 1924년 7월에는 동지들과 함께 국내로 진입하여 일제 국경수비대의 연락선인 신의주, 강계간의 군용전선을 절단했다. 1925년 6월에는 강계군 곡하면으로 진입해 일제의 우편 수송차를 습격해 군자금을 모금하였다. 김원철을 비롯한 재만 독립군의 이 같은 활동으로 식민지 한국의 경영이 어렵다고 판단한 일제는 1925년 6월 11일 중국측과 소위 삼시협정(三矢協定)을 맺어 본격적으로 독립군 및 재만 한인사회를 탄압하였다. 삼시협정의 내용은 중국측이 한인 독립운동자들을 체포하여 일제에게 넘긴다는 것이었다. 이같은 협정이 맺어진 후 중국측은 혹독하게 독립군 및 이주한인을 탄압하였다. 군·관뿐만 아니라 심지어 민간인들까지 현상금에 눈이 어두워 바로 이웃에 사는 한인들을 살해하거나 무력으로 끌어다 일제측에 넘겼다. 일제의 사주를 받은 중국측의 이 같은 야만적 행태 때문에 수많은 독립군이 목숨을 잃어야 했다. 따라서 이를 견디다 못한 한국 독립군들은 중국의 관공리들을 향해 여러 장의 통고문을 보내 그들의 행위를 규탄하고 이같은 행위가 계속 이어질 때는 바로 중국측이 독립군의 적임을 명시했다. 통고문 하단에는 그때까지 중국측에 의해 목숨을 잃은 독립군의 명단을 기록하였다. 참의부 대원으로 활발히 항일무장투쟁 대열에 섰던 김원철도 이 같은 중국측의 탄압에 의해 1927년 집안현에서 희생되었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09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 獨立新聞(1923. 7. 21, 1925. 5. 5)
- 東亞日報(1923. 7. 13, 1927. 5. 14)
- 독립운동사자료집(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제14집 938면
- 獨立運動史料(국가보훈처 소장) 中國編(19) 216~220면
- 독립운동사(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제7권 561~562면
- 日帝侵略下韓國三十六年史(국사편찬위원회) 제8권 477면
- 韓國獨立運動史(文一民) 293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