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8권(2010년 발간)
김우일은 재만 독립군단인 참의부(參議府)의 간부로 활동하다가 1925년 3월 고마령(古馬嶺)전투에 참여하였다.
1924년 초 성립된 참의부는 남만주 압록강 변의 집안현(輯安縣)과 그 주변 지역을 근거로 항일활동을 펼친 단체였다. 원래 대한통의부(大韓統義府)의 구성원이었던 채찬(蔡燦)·박응백(朴應伯) 등은 1923년 말 상해의 대한민국임시정부를 방문했다. 그들은 임정의 요인들과 협의한 뒤 통의부의 일부 부대를 분리시켜 임정 직속의 군부대를 설립할 것을 결정하였다. 그리하여 남만주로 돌아 온 뒤 통의부 의용군 제1·2·3·5중대와 유격대 및 독립소대를 분리해 대한민국임시정부 육군주만참의부(陸軍駐滿參議府)를 성립시켰다.
이 같이 성립된 참의부는 한인사회를 이끄는 자치활동도 시행했지만 항일무장투쟁에 역점을 두고 활동하였다. 따라서 참의부 간부들은 수시로 항일전을 전개하기 위한 작전회의를 열었다. 고마령전투도 1925년 3월 16일 참의부 간부들의 작전회의장을 일제의 초산경찰대가 급습하여 벌어진 것이었다. 집안현 산중인 고마령 막사에서 참의부 간부들이 작전회의를 개최하고 있을 때 밀정 이죽파(李竹坡)를 앞세운 일경찰대가 습격해 총격을 가했다. 회의 도중 습격을 받은 참의부 간부들은 죽음을 무릅쓰고 대항했으나 준비 부족으로 큰 피해를 입어야 했다. 참의장 최석순(崔碩淳)을 비롯해 29명이 전사한 독립군의 대수난이었다. 김우일은 이 전투에서 부상을 입었으나 동지들의 지극한 간병으로 목숨을 건졌다.
건강을 회복한 김우일은 1926년 이후에도 참의부 교통국 주임의 직책을 가지고 항일무장투쟁 전선에 섰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09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 不逞鮮人團體 調査表(中國 檔案館 소장, 1926. 1)
- 韓國獨立運動史(文一民) 266, 267면
- 韓國獨立史(김승학) 372, 373면
- 武裝獨立運動秘史(채근식) 134면
- 독립운동사(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제5권 461면
- 朝鮮民族運動年監(在上海日本總領事館) 203면
- 독립운동사자료집(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제7집 1379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