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5권(2003년 발간)
평남 맹산(孟山)에서 거주하였다. 의병대장 김관수(金觀洙)의 아들로 대한독립단(大韓獨立團)에 가입해 활동하였다.
대한독립단은 1919년 4월 서간도의 유하현·통화현·집안현·흥경현·관전현·환인현·장백현·무송현 등에서 활동하던 독립운동단체들이 통합하여 조직한 독립운동단체였다. 대한독립단은 유하현(柳河縣) 삼원포에 본부를 두고 무장투쟁을 통하여 조선의 독립을 목적으로 활동하였다. 대한독립단은 만주뿐만 아니라 국내에도 지단을 설치해 국내와의 상호협조하에 독립운동을 전개했다. 국내에 설치된 지단은 평안도와 황해도를 중심으로 조직되었다.
김병렬은 1918년 평남 덕천(德川)의 광명(光明)학교 교사로 교육활동을 하다가 1919년 6월 김두석(金斗石)의 소개로 대한독립청년연합회에 가입하여 군자금모집을 하였고, 대한독립단 맹산지단(孟山支團)을 조직하고 활동하였다. 그는 조원조(趙元祚)·안국정(安國鼎) 등 100여 명의 단원들과 함께 영원(寧遠)·맹산(孟山)·덕천(德川) 등지에서 일제경찰을 습격하여 무기를 획득하고 일경을 처단하는 등의 활동을 하였다. 그러나 일경의 추격이 계속되면서 맹산군 옥천면(玉泉面)에서 대한독립단원 이원보(李元甫)가 체포되면서 조직이 발각되어 그를 비롯해 80여 명의 단원이 체포되기에 이르렀다. 그는 이 일로 1923년 12월 24일 평양지방법원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0년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옥고를 치른 후에도 계속해서 독립운동에 매진하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2001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 判決文(平壤地方法院, 1923. 12. 24)
- 獨立運動史資料集(國家報勳處) 第14輯 496∼499, 527面
- 獨立運動史(國家報勳處) 第7輯 383, 401面
- 金炳烈簡曆書(中國陜西省 案局所藏, 1943. 4. 10)
- 韓國獨立史(金承學) 下卷 127面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