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8권(2010년 발간)
권영규는 1920년 서간도지역을 무대로 항일무장투쟁을 펼친 민국독립단(民國獨立團)의 국내특파원으로 국내에 잠입하여 친일주구배 숙청, 일제의 군경 토벌, 군자금 모금 등의 활동을 펼쳤다. 민국독립단은 1919년 4월 서간도 유하현(柳河縣)에서 성립된 대한독립단에서 파생한 독립군단이었다. 국내에서 만주로 건너 온 의병들을 중심으로 결성된 대한독립단은 처음에는 왕정복고를 위한 복벽주의를 견지하였다. 그러나 1919년 4월 상해에 대한민국임시정부가 수립되자 젊은층의 단원들은 임정을 옹호함과 함께 대한독립단도 민권주의에 바탕을 둔 민주공화주의를 지향할 것을 주장하였다. 이에 대한독립단은 복벽주의를 주장하는 측과 공화주의를 주장하는 측으로 나뉘게 되었다. 그리고 이들은 결국 화합하지 못하고 1919년 말 복벽주의를 주장하는 기원독립단, 공화주의를 주장하는 민국독립단으로 갈라섰다. 1920년 말 서간도의 독립운동 단체들은 보다 효율적인 무장투쟁을 위해 통합운동을 벌여 임시정부를 적극 옹호하는 광복군사령부를 성립시켰다. 이에 권영규도 광복군사령부의 예하 부대인 광복군총영(光復軍總營)의 지방 출동부대의 대원이 되어 활동하였다. 그리고 1922년 중엽에는 남만주 지역 독립운동 단체 통합운동에 의해 대한통의부(大韓統義府)가 성립되자 이 단체의 대원으로 활동하였다. 남만주를 무대로 이 같은 활동을 펼쳤던 권영규는 1922년 10월 경 병을 얻어 관전현(寬甸縣)에서 사망하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09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 獨立新聞(1922. 11. 8)
- 韓國獨立運動史(文一民) 254, 259면
- 독립운동사(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제7권 345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