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2권(1996년 발간)
조선혁명군(朝鮮革命軍)에서 군인으로 활동하였다. 조선혁명군은 1929년 12월 20일 결성되었으며, 조선혁명당의 군대이다. 이 조선혁명군은 선언서에서 "국민부로부터 엄연히 분립하여 혁명운동에 대한 군사적 역할을 전적인 임무로 한다"고 발표하였다. 아울러 "조선혁명군은 독립하여 혁명사업에 종사하고 무기는 혁명군인만이 휴대케 한다, 혁명군의 지도기관으로 각 대에서 대표자를 뽑아 군사위원으로서 군사위원회를 조직케 하는데 위원수는 14명으로 한다, 군사위원회에서는 책임자 3명을 선출한다, 그리고 그 명칭을 혁명군 총사령·부사령·참모장이라 한다"고 규정하였다. 이 규정에 근거하여 총사령에 이진탁(李辰卓), 부사령에 양세봉(梁世奉), 참모장에 이 웅(李雄)이 임명되고 종전에 10개 부대로 편성되어 있던 각 지방군은 7개 대로 개편되었다.
또한 김추상이 참여한 조선혁명군은 창립선언서에서 현 단계에서의 자신의 임무에 대하여, 첫째, 재만한국인 대중에게 혁명의식을 주입하고 군사학술을 보급시켜 혁명전선의 기본진영을 확립하고, 둘째, 정치학식과 군사기능이 실제 단체의 정치운동에 적임될 수 있는 기간 인재를 양성하고, 셋째, 국내·국외에서 일본제국주의에 대한 정치적 경제적 건설을 파괴하고, 그 주구배의 기관을 청소하여 기타 일체 반동적 악세력을 박멸하기로 하고 용감하게 전진하여 대중의 당면 이익을 옹호하여 강력한 투쟁을 전개하고자 한다라고 밝히고 있다.
김추상은 1934년 8월경 만주에서 반만항일투쟁을 전개하면서, 양세봉(梁世奉) 사령관과 함께 대립자구(大砬子溝)로 향하던 도중 사령관과 함께 일경에게 체포되었다. 며칠 후 양세봉 사령관이 피살된 장소로 끌려가 양 사령관의 시체의 목을 찌르라고 하자 혀를 깨물어 적의 면상에 뱉으며 항거하다가 피살 순국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5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 무장독립운동비사 170면
- 한국독립운동사(문일민) 437면
- 한국독립사(김승학) 하권 108면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제5권 641면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제7권 712면
- 동아일보(1934. 9. 21)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제6권 109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