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2권(1996년 발간)
황해도 봉산(鳳山) 사람이다.
의군부(義軍府)의 군사부장으로 활동하였다. 그가 활동한 의군부은 3·1운동 후 북간도(北間島)에서 조직된 독립운동단체이다. 통칭 의군단(義軍團) 또는 의군산포대(義軍山砲隊)라고도 하였다. 처음 근거지는 왕청현(汪淸縣) 초모정자(草帽頂子)였으나 봉오동(鳳梧洞) 전투 이후 왕청현 명월구(明月溝)로 이전하였다. 의군부의 주요 간부는 본부의 경우 총재 이범윤(李範允), 총사령 김현규(金鉉圭), 참모장 진학신(秦學新), 총무부장 최우익(崔友翼), 외교부장 신 립(申立), 통신부장 지우강(池雨江) 등이었다. 중부(中部)의 경우는 참모장 고 평(高平), 서무부장 이 을(李乙), 재무부장 김종헌(金鍾憲), 외교부장 김종환(金鍾煥), 통신부장 박 재(朴在), 군법원장 허승완(許承完), 헌병대장 최상운(崔尙雲), 군의감독(軍醫監督) 강문주(姜文周) 등이었다.
한편 김청풍은 신현기 등이 내외의 독립운동지사들과 긴밀한 연락을 취해가면서 「독립신문」의 배포, 독립운동 자금의 전달 등에 노력할 때, 황해도 연안지역에서 걸인 모습으로 왕래하면서 활동하였고, 특히 평양의 목사 손정도(孫貞道)와도 긴밀한 연락관계를 갖고 있었다.
또한 김청풍은 이원식(李元植) 등 수명의 동지들과 함께 상해 임시정부와 연락을 하며, 독립사상의 고취를 위한 인쇄물의 배포, 군자금 모집 등을 전개하고자 하였다. 그리하여 1920년 음력 1월 중에는 「독립신문」40매를 정의도(丁義道)에게 교부하였고, 동년 7월 중에는 권국빈(權國彬) 등과 함께 다수의 독립신문 및 『신한청년』잡지 등을 지참하고 서울에 가 동부 도염동 기독교 예배당에 있는 오(吳)목사 집에서 이원직과 정의도에게 교부하고, 또 동월 중 사리원 작천리에서 「독립신문」을 권국빈의 모친에게 교부하였다.
한편 1920년 6월 6일 황해도 봉산군(鳳山郡) 문정면(文井面) 어수리(御水里) 곽익호(郭益浩)의 집에서 모여 김태용(金泰鏞)·김치은(金致殷)·권국빈·이정률(李廷律)·손재흥(孫再興) 등과 함께 독립청년단이라는 비밀결사를 조직하고, 이 조직에서 총무를 담당하였다. 이 조직에서 함께 활동한 인물로는 총무 김태용, 서기 김치은 등을 들 수 있다.
1920년 7월 11일 이정률 외 5명의 동지들과 사리원(沙里院) 결사대를 조직하여 활동하다 사리원에서 체포되었다.
김청풍은 1921년 8월 1일 경성복심법원에서 소위 정치에 관한 처벌법 위반으로 징역 4년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5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제5권 338·339면
-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제10집 1017∼1021면
- 명치백년사총서(김정명) 제1권 분책 474면
- 무장독립운동비사 75·76면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제2권 241면
-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제9집 1066∼1071면
-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제14집 987면
- 신분장지문원지(경찰청)
- 한국독립운동사(문일민) 308·448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