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2권(1996년 발간)
평북 창성(昌城) 사람이다.
1919년 3·1운동 당시 고향에서 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 1920년 1월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연통제(聯通制)에 참여하여 창성군의 경호원으로서 이덕수(李德洙)·김태묵(金泰默) 등과 함께 활동하였다. 그리고 1921년에도 연통제의 임무를 띠고 장승열(張承說)과 함께 활동하다가 일경과 교전하였고, 그 과정에서 동지인 장승열은 전사하였다.
한편 1921년 7월 독립운동가 김창선(金昌善) 등이 만주로 탈출할 때 김창하가 선편을 제공하여 주었으며, 그 후 동년 11월 만주로 망명하여 독립운동을 전개하였다.
만주에서 김창하는 참의부(參議府)에 참여하여 활동하였다. 참의부는 대한통의부(大韓統義府)가 이념문제로 대한통의부와 의군부(義軍府)로 분열되었을 때 중립적인 입장을 견지하던 통의부 의용군내 제1·2·3·5 중대가 임시정부와 연계를 맺고 조직한 압록강 연안지역을 관할하는 독립운동단체이다. 이 참의부는 중앙의회를 가지고 군사와 민정을 아울러 통괄하는 단체였으며, 창설 당시의 주요 부서와 주요 간부는 다음과 같다. 참의장 겸 제1중대장 백광운(白狂雲), 제2중대장 최석순(崔碩淳), 제3중대장 최지풍(崔志豊), 제4중대장 김창빈(金昌彬), 제5중대장 김창대(金蒼大), 훈련대장 박응백(朴應伯) 등이다.
참의부의 군사활동은 제1중대장 백광운과 제2중대장 최석순에 의해 활발히 전개되었다. 그러나 백광운이 피살된 후에는 최석순이 참의장 겸 제2중대장으로 있으면서 군사활동을 주도하였다.
김창하도 참여한 참의부의 군사활동은 국내진격전으로 대표된다. 참의부는 압록강유역과 접하고 있다는 지리적인 이점을 최대한 활용하여 국경을 넘어 일본군 초소를 습격하는 등 활발한 대일항쟁을 전개하였다. 독립신문 1924년 7월 26일자에 실린 통계만 보더라도 참의부 군대는 1924년 4월부터 7월 16일까지 20차례 정도 국내에 진격하여 군자금 모금 및 무장활동을 전개하였던 것이다. 물론 계절적으로 독립군이 자연을 이용하여 대일투쟁을 하기 가장 좋은 시절이라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이것은 상당히 많은 숫자라고 하겠다. 아울러 이 통계에 따르면 독립군들은 평안도 의주군·초산군·강계군·선천군·영변군·위원군·태천군·용천군·자성군 등 평안도지역을 중심으로 활발한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이처럼 지역적으로 평안도지역이 많은 것은 압록강 대안이 평안도지역이라는 지역적인 이점 외에 참의부의 주민과 독립군 병사들 가운데 평안도 출신이 많아 이곳 지리에 밝았으므로 효과적인 게릴라전을 수행할 수 있었기 때문이기도 하였다.
참의부에서 김창하는 1923년 6월 19일 국내에 진입하여 의주군(義州郡) 영산(永山) 주재소를 습격하였으며, 동년 7월 22일에는 이용규(李龍奎)의 지도하에 김윤식(金潤植)·선우 명(鮮于明)·김언명(金彦明)·이완복(李完福) 등과 함께 의주에 출동하여 조선총독부 시찰원(視察員)이 오는 것을 탐지하고, 동년 8월 15일 오후 4시에 삭주(朔州) 판막령(板幕嶺)에서 그들에게 총격을 가하여 3명에게 중상을 입혔다.
또한 1924년 5월 29일에는 제2중대 제2분대장으로서 후창(厚昌) 우경령(牛頃嶺)에 출동하여 적 1명을 사살하고 1명에게 중상을 입히는 전과를 올렸다. 그리고 동년 6월에는 강계군(江界郡)에 잠입하여 군자금 모집과 전신주 파괴 활동 등을 전개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5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 국외용의조선인명부(총독부경무국) 86면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제2권 474면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제5권 468·691면
- 한국독립운동사(문일민) 174·296·297·298·475면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제7권 556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