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2권(1996년 발간)
1920년 독립운동을 전개하다 만주에서 일제에 의하여 피살된 인물이다.
1910년 일제에 의해 한국이 강점되자 부인 이씨와 함께 남만주(南滿洲)로 망명하여 독립운동을 전개하였다.
당시 남만주 지역에는 이상룡(李相龍)·이회영(李會榮)·이시영(李始榮) 등이 중심이 되어 독립운동기지를 건설하기 위하여 활발히 활동하고 있었다. 그리고 신민회(新民會)의 계획에 따라 경학사(耕學社)·부민단(扶民團) 등 한인의 자치 조직과 신흥무관학교(新興武官學校) 등 독립군 양성 기관이 속속 만들어지고 있었다.
그러던 중 1919년 국내에서 3·1운동이 전개되었고 그 영향이 만주에도 파급되자 만주지역에서 더욱 활발히 독립운동이 전개되었다. 1920년 만주지역 동포들의 독립운동에 놀란 일제는 이 지역의 독립운동세력을 탄압하지 않고는 국내의 치안을 확보하는 것이 어렵다고 판단하게 되었다. 이에 중국의 영토인 만주지역에 자신의 군대를 출동시키는 한편 중국의 마적들을 유인하여 대대적인 항일운동의 탄압에 나서게 되었다.
그러나 일제는 오히려 북간도지역에서 청산리전투(靑山里戰鬪)를 통하여 독립군에 패배를 당하였다. 이에 일제는 이에 대한 보복으로 한인에 대한 무차별 살상을 자행하였다. 그리하여 1920년 말 다수의 한인들이 일제에 의해 피해를 당하였다. 이러한 시기에 만주지역에서 독립운동을 전개하던 김창일은 1920년 12월 22일 관전현(寬甸縣) 향로구(香爐溝)에서 3명의 일본관헌들에게 피살되어 순국하였다.
한편 그의 부인 이씨는 김창일이 순국한 후 남편의 뜻을 계승하기 위해 독립군을 위한 음식마련과 의복마련에 진력하였으므로 독립운동계는 물론 동포사회에서도 크게 이씨의 애국심을 칭송하였다고 한다.
정부는 1995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 조선민족운동연감 97면
- 민족독립투쟁사사료(해외편) 77면
- 한국독립사(김승학) 하권 112면
- 독립신문(1924. 5. 3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