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 공훈록 28권(2023년 발간)
함경북도(咸鏡北道) 청진부(淸津府) 출신인 김창길은 1922년 10월경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로 가서 독립운동을 모색한 끝에 고려혁명군(高麗革命軍)에 합류했다. 고려혁명군은 1921년 6월 자유시참변(自由市慘變)을 거친 뒤 성립되었으며, 이르쿠츠크에서 훈련을 받고 1922년 하반기에 연해주 해방전쟁에 참전하였다.
1922년 11월 소비에트 러시아 당국의 비정규 무장부대 해산 방침에 따라 고려혁명군이 해산되었다. 이에 김창길은 1923년 7월 포시에트 공산당 청년회원이 되어 1924년 1월 하순까지 블라디보스토크 치타 제1연대에 입대했다. 1923년 음력 8월 20일 훈춘(琿春) 여남섭(呂南燮) 집에서 유영조(劉永祚) 등과 함께 고려공산당 선전기관 조직을 위해 파견된 신광호(申光浩)를 만났다.
김창길은 1924년 4월 11일 독립운동 군자금 모집을 목적으로 이대정(李大鼎)과 함께 조선혁명선언 등 22책의 문서를 가지고 블라디보스토크를 출발했다. 4월 20일 부령군(富寧郡) 이진(梨津)에 상륙하여 21일 밤에 청진부로 들어왔다.
김창길과 함께 국내에 들어온 이대정은 문서가 일제 관헌에게 발각될 것을 우려하여, 4월 24일 선전문서를 김창길에게 맡겼다. 그런데 당시는 5월 1일 메이데이 직전으로 단속이 엄중했기 때문에 동료 집에 숨어있던 김창길도 4월 28일 일제에 체포되었다.
김창길은 ‘제령 제7호’위반으로 1924년 7월 23일 함흥지방법원 청진지청에서 징역 2년을 선고받았다. 이에 공소하였으나 8월 22일 경성복심법원에서 기각되어 원산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르고 1926년 8월 22일 출옥하였다. 1927년 12월 28일 신간회(新幹會) 청진지회 설립대회에서 상무간사에 선출되어 활동했다.
정부에서는 2022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 공산주의 선전원 검거의 건(경기도 경찰부장 : 1924. 6. 9)
- 만주지역본방인재류금지관계잡건(국가보훈처, 2009) 211면
- 판결문(判決文)(청진지방법원 : 1924. 7. 23)
- 조선일보(朝鮮日報)(1924. 8. 23, 12. 24, 1925. 1. 18, 1928. 1. 5, 2. 6, 1929. 2. 5, 6. 24, 8. 9)
- 형사사건부(刑事事件簿)
- 신분장지문원지(身分帳指紋原紙)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