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2권(1996년 발간)
평남 덕천(德川) 사람이다.
1930년대 만주에서 조직된 국민부(國民府)에서 활동하였다. 국민부는 1930년대 남만주지역의 대표적인 독립운동 단체이다. 이 단체는 1928년 9월부터 11월 사이에 있었던 3부통합회의가 실패한 후, 동년 12월 신민부(新民府) 군정파(軍政派)와 정의부 탈퇴인사, 그리고 참의부(參議府) 주류세력들이 혁신의회(革新議會)와 유일독립당재만책진회를 조직하자, 정의부를 주축으로 하여 참의부 심용준파(沈龍俊派), 신민부 민정파(民政派) 등을 중심으로 하여 1929년 3월부터 새로운 군정부를 조직하기 위한 회의를 길림성(吉林省)에서 개최하고, 1929년 4월 1일 정의부·참의부·신민부의 해체를 선언하고, 새로이 조직한 단체이다.
김준필이 참여한 국민부에서는 1929년 5월 28일 중앙집행위원회를 구성하고 중앙집행위원회의 위원을 결정하였는데, 당시 선임된 간부 명단을 보면 다음과 같다. 중앙집행위원장 현익철(玄益哲), 민사위원장 김이대(金履大), 경제위원장 장승언(張承彦), 외교위원장 최동오(崔東旿), 군사위원장 이 웅(李雄), 교육위원장 고이허(高而虛), 법무위원장 현정경(玄正卿), 교통위원장 김 돈(金敦), 중앙집행위원 김진호(金鎭浩)·심용준·이일세(李一世)·이동림(李東林)·황기룡(黃起龍)·고활신(高豁信), 사령관 이 웅, 1중대장 양세봉(梁世奉), 2중대장 윤 환(尹桓), 3중대장 이태형(李泰馨), 4중대장 김창헌(金昌憲), 5중대장 장철호(張喆鎬), 6중대장 안 홍(安鴻), 7중대장 차용륙(車龍陸), 8중대장 김보국(金保國), 중앙호위대장 문시영(文時映) 등이었다.
김준필은 1932년 8월 변낙규(邊洛奎)와 함께 국내로 들어와 활동 중, 동년 12월에는 변낙규·김일봉(金一鳳)·장인준(張仁俊) 등과 함께 김일봉의 집에서 무명의 결사를 조직하였다. 이 때 변낙규는 총사령관이 되고, 김일봉은 모집 책임자로, 류영규(劉永奎)는 동지규합 모험대원, 회계책임자 등으로 활동하였다.
그 후 김준필은 이들과 함께 영변(寧邊)·덕천 일대에서 활동 중, 1933년 2월 4일 장인준·유영규·김일봉 등과 함께 일경에게 체포되었다.
1933년 5월 19일 평양지방법원에서 징역 5년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그의 공훈을 기리어 1995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수여하였다.
- 판결문(1933. 5. 19 평양지방법원)
- 기려수필(국사편찬위원회) 427·428면
-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제14집 913면
- 동아일보(1933. 2. 26, 2. 28, 3. 8, 3. 13, 5. 13, 5. 22, 5. 3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