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2권(1996년 발간)
1921년 만주에서 독립운동을 전개하다 일본군에게 피살된 인물이다. 일제는 3·1운동 이후 만주지역에서 독립운동이 활발히 전개되자 이 지역에 근거하여 국내에 진공하고 있는 한국독립군 세력을 제거하기 위하여 1920년 8월 이른바 간도지역불령선인초토계획(間島地域不逞鮮人剿討計劃)을 수립하였다. 그리고 일제는 간도침입의 구실을 만들기 위해 1920년 10월 2일 왕사해(王四海) 등을 두목으로 한 중국 마적을 매수하여 그들의 훈춘(琿春) 영사관 분관을 습격하도록 하였다. 이를 구실로 일본정부는 영사관 및 거류민 보호를 위한다는 미명하에 1920년 10월 7일 군대를 급속히 간도로 출병시켰다. 출동지구는 제1 훈춘방면, 제2 왕청(汪淸)방면, 제3 용정(龍井)방면, 제4는 도문강(圖們江) 대안부근이었다. 훈춘방면은 기림(磯林)소장이, 왕청방면은 대촌(大村)대좌가, 용정방면은 동소장(東少將)이, 도문강 대안은 경찰관·헌병 및 수비대에서 수시로 강을 건너 진출하여 독립군을 소탕할 계획이었다. 즉 일본은 동쪽에서는 블라디보스톡 파견군인 제11·13·14사단의 6,000여 명, 서쪽에서는 관동군의 보병과 기병을 합한 1,200여 명, 남쪽에서는 조선군 제19사단에서 9,000여 명, 제20사단에서 700여 명, 북쪽에서는 북만주에 파견되어 있던 안서(安西)지대의 1,000여 명의 병력 등 합계 약 18,000명에서 20,000명으로 추정할 수 있는 병력을 사방에서 침입시켰다. 이들 침략군들은 1920년 10월 12일부터 간도를 향해 4면에서 포위해 들어왔다. 일본군은 이 작전에서 별 실효를 거두지 못하자 그에 대한 보복 행위로 독립군의 모체인 한인사회와 항일단체·학교·교회 등에 대한 초토화 작전을 실시하여 「경신참변(庚申慘變)」이라 불리는 간도지역의 한인 참살을 감행하였던 것이다. 이러한 시기인 1921년 3월 3일 밤 일제가 장백현 천평(泉坪)에서 민가 5호를 불사르고 독립운동 혐의로 박홍수(朴弘洙)·김치삼(金致三)·노한석(魯漢石), 김씨 성을 가진 2명을 학살할 때 김우정 역시 함께 피살되어 순국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5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 민족독립투쟁사사료(해외편) 91면
- 조선민족운동연감 130면
- 독립신문(1921. 4. 2 장백현통신)
-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제14집 960면
- 한국독립사(김승학) 하권 97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