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2권(1996년 발간)
김병현은 1920년대 중반 만주지역의 대표적인 독립운동단체의 하나인 참의부(參議府)에 가담하여 활동하였다. 김병현이 활동한 참의부는 대한통의부(大韓統義府)가 이념문제로 대한통의부와 의군부(義軍府)로 분열되었을 때 중립적인 입장을 견지하던 통의부 의용군내 제1·2·3·5 중대가 임시정부와 연계를 맺고 조직한 압록강 연안지역을 관할하는 독립운동단체이다. 이 참의부는 중앙의회를 가지고 군사와 민정을 아울러 통괄하는 단체였으며, 창설 당시의 주요 부서와 주요 간부는 다음과 같다. 참의장 겸 제1중대장 백광운(白狂雲), 제2중대장 최석순(崔碩淳), 제3중대장 최지풍(崔志豊), 제4중대장 김창빈(金昌彬), 제5중대장 김창대(金蒼大), 훈련대장 박응백(朴應伯) 등이다. 참의부는 활발한 군사활동을 전개하였다. 이러한 활동은 제1중대장 백광운과 제2중대장 최석순에 의해 이루어졌다. 그러나 백광운이 피살된 후에는 최석순이 참의장 겸 제2중대장으로 있으면서 군사활동을 주도하였다. 김병현도 참여한 참의부의 군사활동은 국내진격전으로 대표된다. 참의부는 압록강유역과 접하고 있다는 지리적인 이점을 최대한 활용하여 국경을 넘어 일본군 초소를 습격하는 등 활발한 대일항쟁을 전개하였다. 독립신문 1924년 7월 26일자에 실린 통계만 보더라도 참의부 군대는 1924년 4월부터 7월 16일까지 20차례 정도 국내에 진격하여 군자금 모금 및 무장활동을 전개하였던 것이다. 물론 계절적으로 독립군이 자연을 이용하여 대일투쟁을 하기 가장 좋은 시절이라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이것은 상당히 많은 숫자라고 하겠다. 아울러 이 통계에 따르면 독립군들은 평안도 의주군·초산군·강계군·선천군·영변군·위원군·태천군·용천군·자성군 등 평안도지역을 중심으로 활발한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이처럼 지역적으로 평안도지역이 많은 것은 압록강 대안이 평안도지역이라는 지역적인 이점 외에 참의부의 주민과 독립군 병사들 가운데 평안도 출신이 많아 이곳 지리에 밝았으므로 효과적인 게릴라전을 수행할 수 있었기 때문이기도 하였다. 김병현은 1924년 6월 7일 제5중대장 김명봉(金鳴鳳)의 지시로 박상만(朴相萬) 등과 함께 봉천(奉天)에 있는 친일파 보민회장(保民會長) 최정규(崔晶奎)를 처단하러 갔으나 최정규가 없어 그의 장모와 서기(書記) 원식(元植)을 사살하였다. 그리고 다시 대서관(大西關) 한인요리점에 들어가 군자금 3백 원을 모금하고 봉천성 밖으로 피신하였다. 거기서 다시 박상만과 함께 군자금을 모금하다가 중국 경찰에 체포되어 일경에 인도되었다. 김병현은 1926년 7월 21일 친일파 5명을 살해한 혐의로 박상만과 함께 관동지방법원(關東地方法院)에서 사형을 받고 순국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5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 한국독립운동사(문일민) 268면
- 한국독립사(김승학) 하권 151면
- 일제침략하한국36년사(국사편찬위원회) 제8권 207면
-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제14집 932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