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21권(2014년 발간)
1921년 중국 장백현에서 대한독립군비단에 가입하여 통신원으로 활동하였고, 같은 해 9월 함남 갑산의 함정주재소와 영림창 함정보호구의 각 청사, 동인면사무소를 공격하였으며, 11월에는 국민단 소속으로 함남 삼수군 호인면사무소와 운전주재소를 공격하여 무기와 군자금을 모집하다가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1920년 중국 간도로 건너가 1921년 길림성 장백현(長白縣)에서 대한독립군비단(大韓獨立軍備團)에 가입하여 통신원으로 활동하였고, 같은 해 9월 18~19일경 군비단 총무 윤덕보(尹德甫)의 명령으로 김병국(金秉國, 이명 金仁植·金龍雲) 등 단원들과 함께 압록강을 건너 국내로 들어가 24일 함남 갑산군(甲山郡) 동인면(同仁面) 함정포리(含井浦里)에 도착하였다. 그의 지휘 하에 한 부대는 함정경찰관주재소(含井警察官駐在所)와 영림창(營林廠) 함정보호구(含井保護區)의 각 청사를 공격하는 한편, 다른 한 부대는 동인면(同仁面) 면사무소를 공격하여 무 기와 군자금을 모집하여 귀환하였다.
1921년 11월 대한독립군비단이 흥업단(興業團) 등과 합병하여 대한국민단(大韓國民團)을 조직하자, 대한국민단 단원으로 편입되었다. 대한국민단 조직 직후인 11월 초순, 국민단 총무 윤덕보의 명령에 따라 김성연(金成淵) 등 27명과 함께 국내로 잠입한 뒤, 같은 달 8일 함남 삼수군(三水郡) 호인면(好仁面)의 면사무소와 운전경찰관주재소(雲田警察官駐在所)를 공격하여 총기와 탄약 등 군수품을 획득하였다. 이외에도 국경과 단천(端川)에서 군자금 모집 활동을 전개하다가 체포되었다.
1926년 6월 30일 함흥지방법원에서 소위 방화·살인·강도·대정(大正)8년제령(制令)제7호 위반·폭발물취체벌칙 위반으로 징역 13년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3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 刑事控訴事件簿
- 時代日報(1926. 6. 11)
- 東亞日報(1926. 7. 17)
- 每日申報(1926. 7. 14)
- 新韓民報(1926. 8. 12)
- 咸興地方法院 제1심 判決(1925. 3. 25) 抄本 假出獄關係書類
- 독립운동사자료집(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3) 제7집 1308, 1313, 1318면
- 독립운동사(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3) 제5권 319, 321면
- 回想記-俄領과 中領에서 進行되던 朝鮮民族解放運動(독립기념관 소장) 66~74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