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5. 12월 일제 (日帝) 가 대궐 (大闕) 을 침범 (侵犯) 하여 명성황후 (明星皇后) 가 살해당하고 이어서 단발령 (斷髮令) 이 내려지니 유인석 (柳麟錫) 이 의병 (義兵) 을 일으킬때 동생 이조승 (李肇承) 은 종사 (從事) 가 되어 종군 (從軍) 하였으며, 1905년 일제 (日帝) 의 강제 (强制) 로 을사 (乙巳) 5조약 (條約) 이 체결되자 이강년 (李康秊) 이 단양 (丹陽) 에서 기병 (起兵) 할때 좌종사 (坐從事) 로 임명 (任命) 되어 제천 (提川) 문경 (聞慶) 청풍 (淸風) 등지에서 일군 (日軍) 과 전투하고 1908. 6. 4 청풍 (淸風) 까치성 (城) 에서 이강년 (李康秊) 이 적탄 (敵彈) 에 맞아 부상을 당하고 피체 (被逮) 될때까지 종군 (從軍) 한 사실이 확인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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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9권(1991년 발간)
충북 제천(堤川) 사람이다.
1905년 을사조약의 늑결로 말미암아 일제의 국권침탈이 한층 가속화되자 단양(丹陽)에서 이강년(李康秊)이 재거(再擧)하게 되었다. 이때 입진(入陣)하여 좌종사(坐從事)에 임명된 그는 제천·문경(聞慶) 등지를 전전하며 일군과 싸우고, 1908년 6월 4일 청풍(淸風) 까치성〔鵲城〕전투에서 이강년 의병장이 부상을 입고 붙잡힐 때 까지 항전을 계속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獨立運動史資料集(國家報勳處) 第1輯 227·306·695面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