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9권(1991년 발간)
경기도 지평(砥平, 현 양평) 사람이다 1907년 음력 8월 1일 의병장 정재학(鄭在學)외 80여 명과 함께 총기로 무장하고 경기도 적성군(積城郡)과 마전군(麻田郡) 등지에서 활약하던 중 일본인 약상(藥商) 안본원사랑(岸本原四郞)을 총살하고 같은 달 신중원(申仲元)과 의병을 거느리고 경기도 삭녕군(朔寧郡) 읍내에서 주사 모씨로부터 군자금을 모집하였다. 그 이후에도 계속 자신의 아들 이창준(李昌俊) 및 의병과 함께 황해도(黃海道) 토산군(兎山郡)의 군청 이방(吏房)으로부터, 그리고 토산시장에서 동장·집강(執綱) 등으로부터 각각 군자금을 모집하는 등의 활약을 하다가 붙잡혔다. 그후 1909년 11월 19일 경성지방재판소에서 소위 강도 및 살인죄로 교수형을 선고받아 공소하였으나 동년 12월 14일 경성공소원에서 기각, 형이 확정되자 자결 순국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1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獨立運動史(國家報勳處) 第1卷 532面
- 獨立運動史資料集(國家報勳處) 別集 第1卷 131∼132面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