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7.12월 의병장 (義兵將) 박정빈 (朴正彬) 휘하 (麾下) 에서 창의돌격대 (倡義突擊隊) 총대장 (總隊長) 이 되어 강화 (江華) 말도 (末島) 에서 군자금 (軍資金) 모집 활동 (募集活動) 을 하고 동년 (同年) 8월20일경 (日頃) 일인 (日人) 기선 (汽船) 을 습격 (襲擊) 하였으며 석포 (石浦) 에서 밀정 (密偵) 송대현 (宋大鉉) 과 양학진 (梁學辰) 을 박계석 (朴啓石) 고부성 (高夫成) 으로 하여금 총살 (銃殺) 케 하고 조인선 (趙仁善) 등 수십여명 (數拾餘名) 을 지휘 (指揮) 하며 일인 (日人) 어선 (漁船) 을 습격 (襲擊) 하여 일인 (日人) 1명 (名) 을 즉사 (卽死) 케 한 후 (後) 피체 (被逮) 되어 교수 (絞首) 를 받아 순국 (殉國) 한 사실이 확인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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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체(被逮) : 남에게 붙잡힘
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9권(1991년 발간)
황해도 백천(白川) 사람이다. 1907년 12월 의병장 박정빈(朴正彬)의 휘하에서 창의돌격대(倡義突擊隊) 총대장이 되어 김덕순(金德順)·지홍일(池洪一)·박계석(朴啓石)·조인선(趙仁善)·고부성(高夫成) 등 수십명과 함께 활약하고 1908년 음력 6월경에는 동지들과 함께 강화도 교동군(喬洞郡)·석모로도(席毛老島)·풍덕군·개성군에서, 그리고 음력 7월경에는 강화도 내 말도(末島)에서 각각 군자금을 모집하였다. 또 1908년 8월 20일경에는 해안에 있던 일인기선을 습격하였고 석포(石浦)에서 밀정 송대현(宋大鉉)과 양학진(梁學辰)을 박계석·고부성으로 하여금 총살케 하였다. 이어 같은 달 조인선(趙仁善) 등 수십여명을 지휘하여 일인어선을 습격, 일인 길촌조치(吉村 治)를 살해한 후 붙잡혔다. 다음해인 1909년 3월 29일 경성지방재판소에서 소위 강도·살인죄로 교수형을 선고받아 항고하였으나 그해 4월 30일 경성공소원과 5월 20일 대심원에서 기각, 형이 확정되어 순국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1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獨立運動史資料集(國家報勳處) 別集 第1輯 47·48·93∼95·199·200面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