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0권(1993년 발간)
평남 순천(順川) 사람이다.
그는 1919년 3월 6일 순천군에서 천도교인과 기독교인이 합세하여 일으킨 독립만세 시위운동에 참가하였다. 천도교인인 그는 차철수(車喆洙)·김계하(金啓河)·이석영(李錫英)·안 일(安鎰)과 기독교인인 최봉환(崔鳳煥)·김성호(金聖浩)·김창환(金昌煥)·김상호(金相浩) 등 2,000여명의 시위군중과 함께 야산당공원(野山唐公園)에 모여 대회를 열고 독립만세를 고창하며 시위를 전개하였으나 일군수비대가 무력탄압하여 시위대는 강제로 해산되고 붙잡혔다.
이해 6월 3일 평양복심법원(平壤覆審法院)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2년형을 선고받고 상고하였으나 7월 10일 고등법원에서 기각되어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2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제2권 393·394면
- 판결문(1919. 7. 10 고등법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