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9권(1991년 발간)
황해도 장연(長淵) 사람이다.
장연군 일대의 독립만세운동은 3월 10일경부터 크게 전개되어 4월 상순에는 동남쪽으로 해주(海州)·옹진군(饔津郡)에 인접해 있는 속달면 태탄리(速達面 笞灘里)에서 만세시위운동이 크게 일어났다.
제1차 운동은 4월 8일 밤 수십 명의 군중이 불을 피워 놓고 모여서 만세를 부르고 조국독립을 경축하는 환성을 올리다가 해산하였으며, 이어 4월 11일 남호리 장터에서 다시 만세시위운동이 크게 전개되었다.
이날 그는 최동석(崔東錫)·최운석(崔運錫) 등과 같이 장터에 모인 수많은 군중을 규합하여 독립만세를 고창하며 시위를 주도하다가 일경에 붙잡혔다.
그리하여 이해 6월 평양지방법원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으로 유죄판결을 받고 7월 26일 평양복심법원에서 징역 1년 6월형을 선고받아 항고하였으나 9월 11일 고등법원에서 기각되어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獨立運動史(國家報勳處) 第2卷 315∼318面
- 判決文(1919. 9. 11 高等法院)
- 獨立運動史資料集(國家報勳處) 第5輯 627∼629面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