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피체(被逮) : 남에게 붙잡힘
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1권(1994년 발간)
광주(光州) 사람이다.
1919년 3·1독립운동 당시 광주에서 학생 대표로 독립선언서를 등사하여 뿌리면서 시민 수 천명과 함께 만세시위에 참가하였으며, 1922년 5월 김정련(金正連) 등과 함께 한국독립단(韓國獨立團)을 조직하고 독립결사대(獨立決死隊)를 편성하여 군자금 모집과 일제 관공서 폭파 등의 활동을 벌였던 것으로 전해진다.
1927년 10월 16일 서울에서 방정환(方定煥)·고장환(高長煥) 등과 함께 조선소년연합회(朝鮮少年聯合會)를 조직하고 중앙집행위원 겸 교양부 부원으로 선임되어, 우리 민족의 장래 기둥이 될 어린이의 보호와 계몽에 힘썼다.
그 후 신간회(新幹會) 광주지회 간사, 광주청년동맹 소년부 집행위원, 광주소년동맹 교양부 집행위원, 광주기독교청년회 간사로 활동하였다. 또한 1928년 8월 5일 정홍교(丁洪敎)·고장환 등과 함께 광주 소년회관에서 전라남도 소년연맹 창립대회를 개최하려 하였으나 일경의 집회 금지 조치로 실패하자, 그날밤 광주 증심사(證心寺)에서 수십 명의 동지들과 모임을 갖고 위 소년연맹의 조직에 관한 협의를 하던 중 붙잡혀, 동년 9월 28일 광주지방법원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으로 금고(禁錮) 4월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출옥 후 1936년 12월 서울에서 조선아동애호연맹(朝鮮兒童愛護聯盟)이 창립될 때 준비위원에 선임되어 활동하였다. 그 외에도 「비야 비야 오너라」 등의 동요를 창작하여 보급하고 우리말로 된 어린이책 「설강동요집」을 펴내는 등, 일제의 소위 황민화(皇民化) 정책에 대항하면서 어린이들의 민족정서 함양에 힘썼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3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 판결문(1928. 9. 28 광주지방법원)
- 신분장지문조회회보서
- 일제침략하한국36년사(국사편찬위원회) 제8권 511·577면
- 한국독립사(김승학) 하권 124면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제10권 1079·1101·1102면
-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제14집 605·606·614면
- 동아일보(1927. 8. 1, 10. 19)
- 조선일보(1936. 12. 2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