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4권(1987년 발간)
평북 희천(熙川) 사람이다. 초산 명신학교 재직중 1919년 3·1독립운동이 일어나자 천마산대(天摩山隊) 3중대에 입대하여 이창진(李昌珍)등과 함께 군자금 모집활동을 전개하였으며, 1921년에는 김창오(金昌伍)의 지휘로 초산군 도원면(楚山郡桃源面)에서 밀정 임모(林某)를 생포하였다. 1922년 9월에는 김용택(金龍澤)의 지휘밑에 군자금 모집중 독립단원 이영선(李永善)·박응백(朴應伯) 등과 합세하여 희천군 동면 명문창(明文倉) 주재소를 습격, 장총 15정, 군도 17개, 탄환 천여발을 획득하였다. 1923년에는 만주로 건너가 환인현 쌍류하 문도양구(桓仁縣雙流河文道陽溝)에서 중국군과 교전하다가 최지풍(崔志豊)의 지휘로 전원 무사히 탈출하였으며, 일본인 궁기(宮岐)를 생포하였다고 한다. 1924년 3월에는 천마산대가 해산하자 연길현(延吉縣)에서 영미(永美)국민학교 교사 및 한의사로서 교포들의 교육 및 후생을 위하여 헌신하다가 8·15광복후에 귀국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기 위하여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1982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한국독립사(김승학) 하권 192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