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9권(1991년 발간)
경남 동래(東萊) 사람이다.
구포면(龜浦面) 구포리에 거주하고 있었으며 이곳에서 전개된 독립만세운동을 주도하였다.
1919년 3월 29일 경성의학전문학교생(京城醫學專門學校生)인 양태근(楊泰根)이 평소 잘 알고 지내는 이곳 면서기 임봉래(林鳳來)를 만나 서울의 3·1독립운동 실황을 상세하게 전하고 계속해서 김옥겸(金玉兼)·유기호(柳基護) 등과 거사하기로 결정하여 태극기 수백매를 밤을 새워가며 준비하였다. 그는 이날 1,200여명의 군중과 함께 독립만세를 고창하고 구금된 동지들의 석방을 외치며 주재소로 돌진하는 등 만세시위를 주도하다가 일경에 붙잡혔다.
그후 8월 7일 부산지방법원에서 징역 1년형을 선고받아 1년 4개월여의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3·1運動實錄(李龍洛) 612∼614面
- 釜山 慶南 三·一運動史(3·1同志會) 56面
- 豫審終結決定書(1919. 7. 16 釜山地方法院)
- 獨立運動史(國家報勳處) 第3卷 192面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