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9년 4월부터 목포신보사 (木浦新報社) 문찬공 (文撰工) 으로 종사하였는데, 1932년 3월 전남 (全南) 목포 (木浦) 에서 전남 (全南) 보성 (寶城) 출신 김백동 (金百東) 의 지도를 받고 1933년 4월 이홍연 (李烘衍) , 정종섭 (鄭鍾燮) 등과 만나 활동을 모의하던 중 동년 (同年) 6월 20일 이홍연 (李烘衍) 등에게 목포지역 인쇄직공조합 결성을 제의받아 1933년 6월 24일 인쇄 노동조합 준비기관 격인 목포 (木浦) 출판노동조합준비위원회 (出版勞動組合準備委員會) 를 통한 목포 지역 (木浦地域) 출판노동조합 (出版勞動組合) 의 결성을 시도하여 1937년 5월 26일 징역 2년, 집행유예 (執行猶豫) 3년을 받은 사실이 확인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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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6권(2006년 발간)
1929년 4월부터 목포신보사(木浦新報社) 문선공(文選工)으로 일하던 그는 1932·3년 전남 목포에서 김백동(金百東) 등의 지도를 받고, 1933년 4월부터 이홍연(李烘衍)·정종섭(鄭鍾燮) 등을 만나며 목포지역 인쇄직공조합의 결성에 대하여 논의하였다. 1933년 6월 24일 인쇄노동조합의 준비기관 격인 목포 출판노동조합준비위원회(木浦 出版勞動組合準備委員會)를 조직하고 목포지역 출판노동조합의 결성을 시도하는 한편 인쇄업 종사 노동자에게 항일의식을 고취하는 등의 활동을 하다가 1935년 9월경 체포되어 1년 8개월여의 옥고를 치르고 1937년 5월 징역 2년을 받았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05년에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東亞日報(1935. 9. 12)
- 判決文(光州地方法院, 1937. 5. 2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