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9권(1991년 발간)
강원도 양양(襄陽) 사람이다.
그는 1919년 양양군 현북면 대치리(縣北面 大峙里)에 살고 있었으며 중학교 교장(中學校 校長)으로 근무하면서 구장(區長)도 겸임하고 있었다.
이곳 현북면의 독립만세운동은 독자적으로 기독교인과 유학자 그리고 각 마을의 구장이 삼위일체가 되어 전개되었다. 그리고 만세운동을 추진하는데 가장 큰 힘을 발휘한 각 마을의 구장은 그를 비롯하여 권광식(權廣植)·김창환(金昌煥) 등이었다.
드디어 1919년 4월 9일 거사일에 현북사무소 앞에서 김춘열(金春烈)·문석종(文錫鍾)·김창환·권광식 등과 함께 주동이 되어 1,000여 명의 군중과 더불어 대한독립만세를 고창하자 일경이 일제히 발포하여 사망자 9명과 부상자 20여 명이 발생하는 격렬한 시위운동 중에 일경에 붙잡혔다.
그리하여 이해 11월 12일 함흥지방법원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 및 소요죄 등으로 징역 6월에
벌금 30원형을 선고받고 공소를 제기하였으나 1920년 3월 8일 경성복심법원에서 기각, 1년여의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判決文(1920. 3. 8 京城覆審法院)
- 獨立運動史(國家報勳處) 第2卷 623∼626面
- 每日申報(1919. 12. 4)

